삶의 기록으로 보는 미국인 교수의 ‘한국 사랑’

윤희일 기자 2023. 6. 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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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성·본관 꿰뚫는 ‘족보박사’…5·18 등 현대사 굴곡 경험까지
지난달 10일 미국에서 95세를 일기로 별세한 서의필 전 한남대 교수(영어이름 존 서머빌)의 생전 모습. 한남대 제공
5월 별세 서의필 전 한남대 교수
제자들 쓴 전기, 7일 출판기념회
6·25 때 동생 전사 후 한국 정착
민주화운동·통일운동에도 기여

“본관이 어디인가요.”

성과 이름을 이야기하면 그는 늘 이렇게 되물었다. ‘그’는 지난달 10일 미국에서 95세를 일기로 별세한 서의필 전 한남대 교수(영어이름 존 서머빌)다. 그는 1968년부터 1994년까지 26년 동안 한남대 영문학과와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사람들은 그를 ‘한국인보다 한국인을 더 잘 아는 미국인’으로 기억한다. 그의 삶을 정리한 책 <서의필 목사의 한국 선교>가 7일 오전 한남대 교정 내 선교사촌의 ‘서의필하우스’(서 전 교수가 거주했던 집)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를 통해 공개된다. 책은 서 전 교수의 제자인 한남대 김남순 교수와 제주대 이기석 명예교수가 썼다.

서 교수의 전기 <서의필 목사의 한국 선교>. 한남대 제공

서 전 교수는 1928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나 26세가 되던 1954년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친동생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것이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서 전 교수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석사학위(1963년)를 취득한 뒤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를 연구해 석사학위(1966년)와 박사학위(1974년)를 각각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은 <18세기 울산지역의 흥망성쇠: 사회변동성향 연구>이다. 조선시대 울산지역 족보를 분석해 지역민들의 신분 변동에서 나타나는 경향과 성격을 규명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한국의 성씨와 본관, 족보 등에 대해 지식을 갖게 된다. 자신에게 성과 본관을 말하면 그 역사를 줄줄이 설명해주곤 했던 이유다. 그를 ‘족보박사’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4·19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경험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한국 민중의 힘을 지켜봤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그는 광주의 시민·대학생·선교사들을 걱정하며 대전에 있는 성심당에서 빵을 수십개씩 사 들고 광주로 향하곤 했다.

그 자신도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언론자유가 탄압받던 시절, 그는 국내로 들어오는 타임스나 뉴스위크 등의 미국 잡지 중 한국 관련 부분이 삭제되는 것을 보고 미군 부대를 방문해 해당 내용을 복사한 뒤 자신의 연구실에 게시하기도 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뉴스위크 기자 등을 광주로 들여보내는 데 기여를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 교수는 저서에서 “해외 언론인 등이 광주로 진입하는 것을 막는 군인들을 한국어로 설득해 광주 시내에 들어가도록 함으로써 해외 언론이 당시 광주 상황을 생생하게 본국에 전송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5·18 민주화운동 이후 서 전 교수는 광주에서 피신해 온 시위대원을 자신의 집 안쪽 서재에 숨겨준 뒤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도왔다. 시위대원의 신원을 끝내 확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쫓기면서 숨겨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자세한 것을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했다고 한다.

한남대 관계자는 “서 전 교수가 전두환 정부 때 ‘요주의 인물’로 찍혀 3개월 체류 비자밖에 받지 못하는 바람에 석 달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서 전 교수는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도 힘을 쏟았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 주민들에게 의료품 등 물품을 직접 전달하곤 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북한 동포들을 위해 기도를 해왔다”는 그는 “(남북이) 제발 서로 싸우지 말기 바란다”는 희망을 밝힌 바 있다.

평화를 추구하며 살았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제국주의·식민주의·전체주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의 규정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제거되어야 합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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