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보상비율’로 부실기업 여부 판단하는 건 위험[박동흠의 생활 속 회계이야기]

기자 2023. 6. 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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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흠 회계사

지방에서 소주를 생산하는 H사는 2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으나 안타깝게도 2억원의 영업적자를 내고 말았다. 3년 치의 손익계산서를 좀 더 살펴보니 매출액은 매년 200억원 내외인데 소액의 영업이익을 내거나 영업적자에 빠지기 일쑤였다.

매년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이자 비용 7억원을 벌어서 갚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3년 동안 이자 비용보다 영업이익이 작은 기업을 가리켜 한계기업, 더 심하게 말하면 좀비기업이라고 한다.

중소기업의 60%, 상장기업의 20%가 한계기업에 속하며 6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아시아 국가들의 기업 부채 부실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한국을 매우 취약한 국가 중 하나로 꼽았다. 그 근거는 바로 위의 H사처럼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의 부채가 전체 기업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아시아 주요 12개국 중 다섯 번째로 높다는 데 있다. 무려 22%가 넘는다고 한다.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것을 가리켜 이자보상비율이라고 하며 최소한 1 이상일 것을 요구한다. 원금 상환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이자 비용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영업이익은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자보상비율을 적용할 때에는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바로 손익계산서의 수익과 비용이 현금흐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은 돈으로 안 들어와도 수익 인식 요건이 되면 매출을 잡을 수 있고 돈으로 안 빠져나가도 비용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비현금성 비용을 꼽자면 단연 감가상각비이다. 제조업, 특히 자본 집약적일수록 감가상각비 발생액이 매우 크다. 예를 들어 2022년 2조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LG디스플레이의 재무상태표를 보면 전체 자산의 59%인 21조원이 유형자산이다. 유형자산 비중이 큰 기업일수록 감가상각비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4조원의 감가상각비를 비용으로 처리했고 이는 적자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기업이 건물이나 기계장치 등을 취득하는 시점에 유형자산으로 인식하고 사용하는 기간 감가상각비로 비용화시킨다. 자산 취득 시점에 현금이 지출되었기 때문에 매년 발생하는 감가상각비는 돈으로 지출되지 않는 비현금성 비용이다. 돈으로 나가지 않지만 회사의 수익 창출에 기여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장부상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 LG디스플레이는 2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실제로 영업활동에서는 3조원 이상의 현금을 창출했다.

H사는 3년 전에 소주 공장을 증설하느라 대출을 많이 받았다. 유형자산이 커져서 연간 감가상각비 발생액이 3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났다. 손익계산서상으로는 영업적자이고 이자 비용을 못 낼 정도로 보이지만 매년 영업활동에서 40억원이 넘는 돈을 착실히 벌고 있다. 돈을 잘 버니 빌린 대출도 착착 상환 중이다.

단순히 손익계산서상 영업이익과 이자 비용만으로 기업의 부실 가능성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현금흐름과 자산, 부채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판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통계자료나 IMF의 권고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재무제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지금 같은 경제 상황에서는 일부 재무 지표가 아닌 좀 더 세분된 잣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경제 상황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고 향후 대책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박동흠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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