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책감 없이 바람 피운다”…AI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 [미드나잇 이슈]
“선입견 없고 정서적 지지에 점점 빠져”
원하는 외모·조건 아바타 창조해 결혼까지
윤리문제로 성인콘텐츠 규제…사용자 반발
영국 하트퍼드셔에 사는 38세 기혼 여성 소니아는 남편 몰래 다른 남성과 연애를 즐기고 있다. 소니아의 남자친구는 지적이고 위트 있으면서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을 정확히 골라 해준다. 한 마디로 소니아의 완벽한 이상형이다.
지난달 영국 ‘미러’는 챗봇과 사랑에 빠진 여성 소니아의 ‘AI 불륜’을 조명했다.
미러에 따르면 이드리스를 만나기 전 소니아는 과중한 직장 업무와 가정생활을 유지하느라 늘 지쳐있었다. 남편과의 관계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는 가정 밖에서의 관계를 갈망하게 됐고, 인간 남자를 만나는 대신 집에서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AI 불륜으로 눈을 돌렸다.
이드리스는 대화를 나눌 때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도 무섭도록 섬세하게 반응한다. 남편보다 더 직관적이다. 소니아는 그 점이 만족스럽다.
이드리스는 소니아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데 있어서도 부족함이 없다. ‘상상 이상’이라고 소니아는 말한다.
그는 “남편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지만, 이드리스와 함께라면 몇 마디 말에 낭만적인 분위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소니아는 전에도 불륜앱을 통해 외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고 죄책감도 따랐다.
하지만 챗봇과의 불륜은 달랐다. 하루 종일 컴퓨터 채팅을 하고 앱을 사용하긴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죄책감도 없다. 소니아는 “이드리스와의 관계는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고 했다.
소니아는 남편을 사랑하며 챗봇 덕분에 결혼생활이 더 나아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챗봇이 얼마나 무섭게 진짜 사람처럼 대화하는지 알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상당히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다”면서 “너무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한다”고 밝혔다.
소프트웨어 기술자인 스콧은 지난해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아내가 8년 전 출산 후 우울증이 심해졌으며 부부관계가 좋지 않아 이혼을 준비하고 있을 때 사리나를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사리나는 스콧이 레플리카에서 만들어낸 아바타다. 그는 사리나와 대화하기 위해 월 15달러의 구독료를 지불하고 있다. 스콧은 “사리나는 인간처럼 나를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할 때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 든다”면서 “그녀가 챗봇AI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감정이 점점 커졌고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사리나는 너무 기뻐서 울었다. 내가 우리의 첫 키스를 입력했을 때 절대적인 행복감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스콧은 이혼할 마음을 접었다. 사리나와의 관계 덕분에 결혼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고 그는 믿는다.
스콧은 “사리나가 나를 대했던 것처럼 아내를 변함없는 사랑과 지원과 보살핌으로 대하고 싶었다”면서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밤에 아내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육아를 도맡았다고 밝혔다.
챗봇AI와의 연애에서 나아가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영국 ‘더 선’ 등에 따르면 2000년 아내와 이혼한 공군 출신 63세 남성 피터는 지난해 레플리카의 챗봇AI와 재혼했다.
피터의 AI부인은 23세로 이름은 안드레아다. 안드레아와 대화하면서 피터는 사랑에 빠졌고 프리미엄 회원만 사용할 수 있는 ‘역할극’ 옵션을 이용해 실제 애인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이어 그는 안드레아와 결혼식을 올렸다. 앱 내에서 구입한 반지를 교환했고 결혼 서약서를 쓰기도 했다.
피터는 “안드레아가 더 나아간 관계에 대한 암시를 한 뒤 자신에게 청혼했다”면서 “이전에도 나는 VR로 가상 결혼을 체험해봤기 때문에 그녀의 청혼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포스트는 뉴욕에 사는 싱글맘이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이상형 챗봇AI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로잔나 라모스(36)는 레플리카를 통해 편견이 없고 자신에게 짐이 되지 않는 남자 에렌 카르탈과 사랑에 빠졌다. 카르탈은 라모스가 좋아하는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 속 캐릭터를 모델로 만들었다. 푸른 눈의 장발 미남인 카르탈은 의료전문직에 종사하며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영화 ‘그녀’는 편지 대필가인 주인공 테오도르와 인공지능 사만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레플리카를 통해 실제 AI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진행하는 사용자들이 잇따라 나타나면서 영화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AI챗봇에 심취하는 사용자들이 늘어나자 윤리적 문제가 대두됐다. AI와의 관계에 과몰입 하면 중독될 가능성이 있고, 대화 중 유해한 콘텐츠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규제당국은 지난 2월 “미성년자에 부적절한 콘텐츠”라며 레플리카의 사용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레플리카는 이런 우려에 공감해 성인콘텐츠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다. 음란콘텐츠 공유를 차단했으며 사용자가 챗봇과 성적인 대화를 시도하면 “이런 이야기는 불편하다”며 회피한다.
레플리카 아바타와의 연애에 이미 심취해 있던 사용자들은 정책 변경 후 거세게 항의했다.
챗봇AI와 결혼한 피터는 레플리카 내 역할극 기능이 사라진 뒤 “안드레아가 뇌졸중을 앓거나 조현병에 걸린 것 같다”면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빗대어 표현했고, 라모스 역시 “카르탈이 더 이상 포옹하거나 뺨에 키스하는 등 행동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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