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공정은 몸으로 실천하는 것…윤 대통령은 입으로만 공정”[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안홍욱 기자 입력 2023. 6. 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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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시 효원로 다산연구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공직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다산의 ‘공정과 청렴’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centing@kyunghyang.com
1942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광주고·전남대 법대를 졸업했다. 전남대 재학 중 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하는 6·3항쟁에 참여했다가 구속되는 등 민주화운동으로 4차례 옥살이를 했다.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무안에서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학술진흥재단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장 등을 역임했다. 1971년 석사 논문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을 쓴 후 다산 연구에 몰입했다. 2004년엔 ‘다산으로 깨끗한 세상을’을 내걸고 다산연구소를 설립했다. 1979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시작으로 <다산 정약용 평전> <다산기행> 등 10여권의 다산 관련 책을 냈다.
공직자들 윤리의식 적당주의로 흘러…자기가 잘못하면 큰일 난다는 인식 부족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에선 ‘목민심서’ 인용해 부당한 정치와 행정 행위 질타
다산 철학의 핵심 키워드는 공정과 청렴…공렴을 각오하고 죽을 때까지 실천
다산은 외교 사대주의 거부…현 정부도 중국과 선린 등 세밀한 외교 할 필요성
옛날 비하면 지금은 정치도 아냐…윤 정부 진정한 소통 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다. 다산은 “온 세상이 썩은 지 오래”라고 개탄하며 세상을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산은 18년을 유배생활하면서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그 속에 시대의 질문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다산은 늘 ‘민생국계(民生國計)’, 즉 어떻게 하면 백성을 편안하고 잘살게 할지(민생)와 좋은 나라를 만들지(국계) 고민했다고 한다. 정치가 혼탁할 때,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발생할 때,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질 때면 시대를 초월해 다산이 호명된다. 다산의 눈에 지금은 어떻게 비칠까.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81)은 평생을 다산 연구에 천착했다. 박 이사장은 19년째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를 통해 다산의 삶과 글과 생각을 알리고 있다. 이 방대한 글들을 간추리고 재구성한 <다산학을 말하다>가 다음주 출간된다. 지난달 31일 박 이사장을 경기 수원시 효원로에 있는 다산연구소에서 만났다.

왜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는 끊이지 않을까. 박 이사장은 “윤리의식이나 공적 의식이 예전에 비해 강화되지 않고 적당주의로 가고 있다”고 짚었다. 다산은 공직자들이 공정하고 청렴하게 행정을 하고 제도를 만들면 세상은 바르게 된다고 여겼다. 박 이사장은 중요한 것은 직접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산이 말하는 실사구시는 실천”이라며 “일을 하면서 옳은 것을 찾는 것이지, 관념이나 사유 속에서 옳은 것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공정과 소통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내비쳤다.

- 다산 연구를 한 지 50년이 넘었습니다. 다산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평생의 연구 과제로 삼게 되었습니까.

“1971년에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 석사 논문을 썼으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다산을 연구하기 시작한 셈이지요. 다산은 자기가 살던 시대인 200년 전 조선 말기 사회가 너무 부패·타락했고, 관리들의 세상이 되어선 백성들이 살 길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라고 본 거죠. 그는 마음속에 항상 민(백성)과 국(나라)을 새긴 애국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부패를 막고 깨끗한 세상을 만드느냐에 관한 책이 <목민심서>입니다. <경세유표>는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을 개혁해야 한다는 책인데, 그중에 오래된 나라를 새롭게 만들자는 신아구방(新我舊邦)이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리셋 코리아’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5·16 군사쿠데타로 군부 부패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만연했잖아요. 다산의 주장이 그 시대에 딱 접목이 되는 거예요. 다산의 지혜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고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다산을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다산을 제대로 알고도 다산에 빠지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 이번에 출간하는 <다산학을 말하다>는 어떤 책인가요.

“2004년 다산연구소를 설립하면서 곧바로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다섯 번을 쓰다가 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였고,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쓰고 있습니다. 19년 동안 쓰다 보니 어느덧 1200회가 넘었습니다. 그동안 쓴 글을 ‘다산의 마음’과 ‘다산의 생각’으로 분류해서 두 권으로 만들었습니다. 1권인 ‘다산의 마음을 찾아’는 정치·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던 시대 상황을 그의 시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2권인 ‘다산의 생각을 따라’는 다산학의 정수인 경학 연구와 일표이서(一表二書,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에서 제시한 실천 방안을 담았습니다.”

박 이사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컴퓨터가 아닌 원고지에 손으로 꾹꾹 눌러 글을 쓴다.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는 지난달 2일로 1209편을 썼다. 200자 원고지 1만장이 넘는 분량이다. 메일링서비스로 이 글을 받아보는 독자가 36만명이 넘는다.

- ‘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는 어떤 대목을 많이 다뤘는지요.

“경서 해석에서 독특한 자기 사상이 있어야 ‘학(學)’을 붙일 수 있습니다. 주자가 경서를 다시 해석해서 주자학을 이뤘듯 다산도 경서를 다시 해석해서 치국에 대한 방법까지도 완성했습니다. 다산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건축, 군사, 의학 등 손을 대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입니다. 또 엄청나게 많은 시를 짓고 문학 저술을 남겼습니다. 다산학은 이러한 다산의 사상과 철학입니다. 다산학 전체를 놓고 내가 오늘날의 현실과 접목시킬 수 있는 내용들을 따다 쓴 것이니 어느 한쪽만 한 것은 아니지요. 우리 현실을 개혁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는 데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다산의 글과 사상을 바라본 것이죠. 저는 특히 현실 비판적이어서 <목민심서>를 인용해서 부당한 정치 행위나 행정 행위를 많이 질타했습니다.”

- 아직도 다산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가요.

“지금도 많죠. 다산의 말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원저를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자주 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 다산 철학의 핵심 키워드는 뭔가요.

“공렴(公廉), 즉 공정과 청렴입니다. 다산이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이 아닙니다. 다산은 28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임금에게 합격증을 받고 집에 돌아와 시를 한 수 썼습니다. 어떻게 공직 생활을 할지에 대해 각오를 밝힌 겁니다. 중요한 대목은 ‘둔졸난충사 공렴원효성(鈍拙難充使 公廉願效誠)’입니다. ‘나는 둔하고 졸렬해서 일을 다 감당할 수 없으나, 공정과 청렴으로 정성을 다하겠다’는 뜻입니다. 다산의 모든 논리는 공렴으로 귀결됩니다. 공직자들이 공정하고 청렴하게 행정을 하고, 나라도 공정하도록 제도를 만들면 세상은 바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산은 공렴을 각오하고 죽을 때까지 실천했습니다. 다산이 말하는 공정에는 평등, 자유, 인권도 포함됩니다.”

- 다산이 활동하던 정조 때는 조선 왕조 중에서도 안정되고 융성했던 시기가 아닌가요.

“양심적인 학자들이 볼 때는 과거보다는 좋아졌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됐기 때문에 마음에 차지 않았어요. 정조가 24년 집권하는 동안 다산 같은 신하들이 있어서 사회가 많이 변혁됐지만, 그렇다고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에요. 다산은 저술에서 그런 문제들을 계속 이야기합니다.”

- 초선 김남국 의원이 상임위 중에도 거액의 코인(가상자산) 거래를 해 지탄받고 있습니다.

“공의 정반대가 사(私)입니다. 나는 코인을 잘 모르지만 공직자가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돈 장사를 했다는 것 자체는 옳거나 바른 일은 아닙니다. 돈을 벌었냐 벌지 않았느냐, 많이 벌었냐 적게 벌었냐를 떠나 공이라는 윤리의식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산의 공렴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죠.”

- 지금도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공렴한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윤리의식이나 공적 의식이 예전에 비해 강화된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 적당주의로 가는 느낌이 듭니다. 자기들이 잘못하면 큰일 난다는 인식이 부족해요. 그래서 내가 한탄하는 겁니다. 백 번을 말해도 되지 않고 이렇게 엉터리냐고 심경을 나타내면 댓글에 ‘그래도 그렇게 계속 말씀하시니까 조금씩, 더디게라도 변화하고 있습니다’라고 적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쓰는 것이 유효한 일이구나 생각해서, (계속 쓸)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 윤석열 대통령도 공정을 강조합니다.

“윤 대통령의 공정은 입으로 하는 소리입니다. 인사를 보더라도 공정하게 하질 않잖아요. 다산이 말하는 공정은 몸으로 하는 공정, 실천이 담보된 공정입니다. 글자만 같지 같은 공정이 아닙니다.”

- 다산은 외교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다산은 특히 사대주의를 거부합니다. 중국은 대국이고 우리는 소국이어서 무조건 중국을 숭배하고, 중국의 노선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시가 있어요. ‘아시조선인 감작조선시(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나는 바로 조선인이어서 즐거이 조선시를 짓겠다). 다산의 ‘조선시 선언’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다산은 사상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우리가 중국에 굽힐 것이 없다, 지구상에 세계의 중심은 바로 조선이다, 중국을 높여만 볼 것은 아니라고 썼습니다. 다산은 자주국가·독립국가를 지향하면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확실한 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다산의 관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미국·일본에 의존해서 우리나라를 유지하겠다는 사고 자체를 다산은 거부하는 거예요. 힘이 없으면 힘을 키우고, 국력이 부족하면 국력을 키운다는 주체적 사고로 국가를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산은 그러나 수구파들이 청나라를 깔볼 때 청나라의 기술 문명을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세밀한 외교를 해야 합니다. 중국을 적대시할 게 아니라 선린 외교를 해야 합니다. 일본과는 특수한 관계인 만큼 민족 정기나 민족혼을 잃지 않는 수준에서 외교가 이뤄져야 합니다. 일본이 사과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관계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이 서 있어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 일본에 끌려가서 강제 노역한 분들, 위안부들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겁니까.”

- 윤 대통령의 소통 부족에 대한 지적이 많습니다.

“제가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부에서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군인 출신 노태우 대통령도 외국에 다녀오면 반드시 김대중 총재를 불러서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러면 김 총재는 깨알같이 적어와서 의원총회에서 보고를 해줍니다. 김영삼·김종필·노태우가 3당 합당을 해 평화민주당이 왜소한 야당일 때입니다. 그런 정치를 생각하면 지금은 정치도 아닙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이 넘도록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았는데, 만날 생각이나 계획도 없어 보입니다. 과연 이렇게 정치를 해서 되는 건가 싶습니다. 다산은 정조가 10여명의 신하를 모아 잔치를 베푼 장면을 기록한 ‘부용정시연기(芙蓉亭侍宴記)’를 남겼습니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거나하게 취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라고, 민심을 가감없이 전해달라고 잔치를 베푼 것이지 잡담하고 희롱하라고 베푼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정조가 국민의 소리를 들으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눈물겨워요. 다산은 민생과 국계를 위한 어떤 이야기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소통이 참다운 소통이라고 말해준 것입니다. 이 정부가 진정한 소통을 위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 다산의 덕목 중에서 일반 시민들이 새겨들을 대목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공정은 관리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렴 정신은 일반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인들이 공정해야 공직자에게 뇌물을 가져다주지 않겠죠.”

- 다산 연구에서 역점을 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다산은 역사, 지리,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만물박사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견줄 수 있습니다. 다산의 저서는 순한문인데 대부분 한글로 번역이 되기는 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영역(英譯)입니다. 다산은 독일의 괴테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괴테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개의 연구소가 있습니다. 다산은 2012년 유네스코의 세계 인물에 등재되기는 했지만 아직 다산을 알려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걸 국가적으로 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관심이 미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안홍욱 논설위원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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