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론몰이식 KBS 수신료 분리징수, 공영방송 옥죄기인가
대통령실이 KBS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도록 법령을 개정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했다고 5일 발표했다. 1994년부터 한국전력이 전기요금에 합산해 걷고 있는 현행 통합징수 방식을 폐지하고, 수신료를 따로 징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대통령실은 직접 홈페이지에서 한 온라인 찬반 여론조사에서 징수 방식 개선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았다는 점을 핵심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조작 가능성 등 문제점이 다수 드러난 터라 신뢰성엔 물음표가 쳐 있다. 그걸 ‘국민 여론’이라고 밀어붙이니 공영방송 옥죄기에 나섰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9일부터 한 달간 국민제안 홈페이지의 ‘국민참여 토론’ 코너에서 총 투표 수 5만8251표 중 96.5%가 수신료 징수 방식 개선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투표는 동일인의 중복투표가 얼마든지 가능한 방식이라 여론을 정확히 반영했다고 볼 수 없다. 한때 여당과 일부 보수 유튜버가 지지층을 상대로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결국 기울어진 여론조사로 분리징수를 강행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여타의 세금·공과금 부과 방식도 ‘국민 여론’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은 2016년 수신료 통합징수 관련 소송에서 현행 방식에 대해 “적법하다”며 필요성과 효율성을 인정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도 수신료를 ‘공영방송 사업이라는 공익사업의 경비조달을 위한 특별부담금’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실의 여론조사 투표는 이런 기본적 사실도 제시되지 않은 채 이뤄졌다.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은 사법부의 법적 판단이나 야당 반발을 우회해 방송법 개정보다 시행령 손질을 통해 분리징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시행령 통치’로 일방통행식으로 정책을 강행할 태세다.
여론몰이식 수신료 분리징수 방침은 공영방송 위기를 부를 것이다. 분리징수가 시행되면 KBS 예산의 45%를 차지하는 수신료 재원이 절반 이하로 줄게 된다. 재난·해외송출 방송이나 공익성 높은 프로그램이 축소·폐지돼 공영방송 기능이 위축되고, 상업광고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 또 분리징수 비용이 추가로 필요해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이런 퇴행적 과제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공공성이 있는 수신료 개편·폐지 논의는 정권이 주도해 속전속결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면직에 이어지는 공영방송 조기 장악 의도가 아니라면 대통령실은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당장 멈춰야 한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