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전세사기 협동조합

부동산은 사기의 단골 메뉴다. 그도 그럴 것이 통계청 발표를 보면, 한국은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기준 74%에 육박한다. 사기꾼 입장에서는 일단 마음먹으면 방법은 무한 가지다. 인천 미추홀구 일대 전세사기 주범인 ‘건축왕’ 남모씨 수법이 그랬다. 공인중개사도 낀 남씨 일당은 2800여채 사기를 쳤는데, 갭투자 사기라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 수법을 썼다.
폰지는 임차인이나 구매자가 투자한 돈을 다른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1920년대 다단계 금융 사기를 처음 저지른 찰스 폰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수백 가구의 연립·다세대 주택을 돌려막기 한 ‘빌라왕’들의 사기 행태가 이 방식이다. 이들에게 속아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대출금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된 피해자가 속출했다. 그러는 사이, 미추홀구에서만 전세사기 피해자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비보가 이어졌다.
전세사기 특별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피해자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 견디고 눈물을 쏟을 뿐이다. 경향신문이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39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는 극심한 우울·자살 충동을 겪고 있었다. 피해자 10명 중 6명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응답자 중 35.9%는 우울 고위험군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만 혹독하게 정신적·경제적으로 벼랑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경기 동탄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묘안을 냈다. 피해자 18명이 모여 ‘탄탄주택협동조합’을 세웠다고 한다. 이 조합은 얼마 전 전세사기 피의자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았다. 피해자는 원하는 기간 동안 거주하고, 이사하면 조합이 그 주택을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어떻게든 손실을 최소화해보려는 자구책이자 궁여지책인 셈이다.
꽤 오래전부터 전세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 왔다. 지금 터진 전세사기 사건은 위기의 전조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 집값이 떨어지니 ‘깡통전세’가 속출하면 앞으로 그 피해가 수만, 수십만 가구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다. 허술한 제도 틈에서 이제 전세사기는 누구라도 닥칠 수 있는 ‘우리 일’로 바라볼 때가 됐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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