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현충원에 소풍 가는 날
알링턴 국립묘지는 워싱턴 DC 중심가에서 지하철로 20분쯤 걸린다. 포토맥강을 건너 버지니아주에 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40만 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후손들이 절대 잊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곳이다. 미국 육군이 관리하는데 장군과 병사의 구분이 없다. 죽어서는 똑같은 한 평 반 넓이에 사망 순서대로 묻힌다. 같은 날 숨졌으면 알파벳 순이다. 알링턴에 묻힌 첫 번째 군인은 1864년 펜실베이니아 출신 일병이었다.
▶이후 확장 공사가 여러 번 있었는데, 부실 관리가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엉뚱한 묘비를 세웠다거나, 노출된 관이 부서진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두 유해를 한 곳에 안장한 경우까지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가슴 뭉클한 사연이 더 많다. 한 회사가 1992년 크리스마스에 5000개 화환을 기부한 일을 계기로 비슷한 기부가 이어져 2014년엔 모든 묘역에 화환이 놓이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
▶알링턴 내 원형극장은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재향군인의 날, 부활절 때 성대한 의식이 거행된다. 매년 5000명 넘는 사람이 행사를 즐기러 온다. 5, 6월에는 한 달 동안 투어 행사도 이어진다. 유족들은 각 묘소에 비문 그리고 신앙을 상징하는 표지를 세울 수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인된 신앙 표지가 63가지가 있는데, 뿔이 다섯 개 달린 별 모양의 부적인 ‘펜타클’을 허용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립서울현충원도 명소다. 날씨 맑은 날 산책 코스로 이만한 곳도 없다. 지하철 동작역에서 내려도 좋고, 온 가족이 자동차를 이용하면 주차장도 널찍하다. 꽃향기와 함께 어우러진 연못, 그리고 싱그러운 초목이 마음까지 씻어준다. 현충문·현충탑을 거쳐서 왼편으로는 유격부대 전적비, 육탄10용사비를 볼 수 있고, 바른편에는 애국지사묘역, 임정묘역, 유공자묘역, 대한독립군 무명용사위령탑이 기다린다. 저절로 숙연해지면서 발걸음 그대로 현대사 공부가 된다.
▶보훈부가 좀 더 친근하게 찾을 수 있는 현충원을 만들려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새해 벽두 정치인들이 검은 정장 입고 의전 서열에 맞춰 머리를 숙이는 엄숙한 곳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추모 공간이면서 동시에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겠다고 한다. 계절에 맞춰 영화제·음악회·전시회를 열고, 알링턴의 ‘꺼지지 않는 불’ 같은 상징물도 더 고안할 것이다. 누구나 현충원으로 가족 소풍도 가고, 데이트도 하고, 외국 관광객도 빼놓지 않고 찾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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