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이래경 ‘부실 검증’ 참사…민주 의원들 “검색만 했어도”

조윤영 2023. 6. 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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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야당 민주당의 길]민주 혁신위원장 사퇴 후폭풍
이 대표, 당에 이래경 수락 깜짝 발표
‘친이재명계 혁신위’ 구성 서둘러
논란 증폭 → 9시간 만에 사퇴 ‘삐끗’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운데)와 박광온 원내대표(오른쪽), 정청래 최고위원(왼쪽)이 지난 5일 국회에서 당 최고위원회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했던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69)의 ‘임명 9시간 만에 사퇴’는 초보적인 검증 실패와 국민 눈높이와 괴리된 판단이 빚어낸 ‘인사 참사’다. 당 쇄신의 첫발부터 삐끗한 이재명 대표의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이래경 이사장은 재야 및 시민사회 원로 쪽에서 이 대표에게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사장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초대 상임위원, 한반도재단 운영위원장,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지낸 김근태계 인사로 분류된다. ㈜호이트한국을 설립해 30년 가까이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 이사장은 혁신위원장직을 몇차례 고사했지만 이 이사장을 추천한 재야·시민사회 쪽의 설득으로 지난 4일 수락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이 대표는 최고위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하면서 이 사실을 알렸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6일 <한겨레>에 “일요일 최고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이 이사장이 운동권 출신일 뿐 아니라 30년간 기업 운영도 했다는 말을 듣고 ‘균형을 맞출 수 있겠구나’하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지도부 관계자도 “다소 강경한 입장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당 쇄신을 위해 강경한 성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표는 이튿날인 5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혁신기구를 맡아 이끌 책임자로 이 이사장을 모시기로 했다”고 깜짝 발표했다. 당 관계자는 “(지난달 14일) 쇄신 의원총회에서 혁신위 구성을 결의한 뒤 시간이 너무 지났고 당 안에서는 왜 빨리 (혁신위 구성을) 안 하느냐고 재촉하니까 급하게 (위원장을) 찾아왔고 마침 이 이사장이 위원장직을 수락하니까 바로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당 지도부는 재야·시민사회 쪽에서 추천한 이 이사장을 필두로 혁신위에 개혁적인 인사들을 배치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래경 이사장이 김근태계 인사이기도 하니까 개혁적인 위원들을 배치해 민주당의 낡은 관행이나 제도, 문화를 고치고 최근 당내 현안들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풀 수 있을 것”(또 다른 당 지도부 관계자)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이사장의 과거 발언이나 행적 등에 대한 검증은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이 이사장의 과거 발언도 지난 4일 저녁 최고위원들에게 공유됐으나, “보수 쪽이 문제를 삼을 수도 있지만 앞으로 공인으로서 절제된 언어를 쓰겠다고 하면서 충분히 돌파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이때는 ‘미국 패권 비판’ 등 국제 정세에 대한 발언이 일부 공유됐고, “자폭된 천안함 사건”이라는 페이스북 발언 등은 공유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튿날 인선 발표 직후 이 이사장의 천안함 관련 과거 발언이 알려지자 이재명 대표는 기자들에게 “그 점까지는 저희가 정확한 내용을 몰랐던 것 같다”며 진땀을 뺐다. 의원들은 “구글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걸 우리만 몰랐다”,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도부의 한 인사는 “기초적인 검증은 이 대표 주변에서 다 했을 걸로 알았다”고 말했다.

앞서 이 이사장은 지난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 대표와 관계에 대해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내가 경기도연구원의 객원연구원으로 일했다. 딱 한 차례 만났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대선 때부터 최근까지도 이 대표를 지지하는 글을 써왔다. 재야·시민사회가 추천했다는 점과 그가 친이재명 성향이라는 점, 그리고 혁신위 구성을 더 늦출 수 없다는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검증 소홀 → 깜짝 발표 → 논란 증폭 → 당일 사퇴라는 참사를 빚은 것으로 보인다.

‘이래경 혁신위’가 당일 좌초하면서 혁신위 구성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당 사정도 잘 알면서 혁신을 이끌어내야 하고 최소한 이 대표에게 편중되지 않은 인사를 찾아야 하는 부담이 더 커졌다. 이번 일을 두고 ‘친명계 인사로 혁신위를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당 안팎의 의구심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당 일각에서는 원외 인사, 내부 인사 등 백가쟁명식 논의가 다시 이어지는 분위기다. 다만 당 지도부 관계자는 “외부 인사 영입에 실패했다고 해서 외부 인사를 안 한다는 방침을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이 대표 체제에서 쇄신을 통해 살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당원이나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좀 더 과감한 쇄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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