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애니에 K-감성이? 한국계 감독의 이민자 서사 담은 ‘엘리멘탈’

강푸른 입력 2023. 6. 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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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멘탈’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픽사의 신작 〈엘리멘탈〉이 오는 14일 국내에서 개봉합니다. 세상이 물, 불, 흙, 공기 등 4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원소설에 기반을 둔 3D 애니메이션으로, 화끈한 성미가 특징인 불의 종족 '앰버'가 감성적인 물의 종족 '웨이드'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공개된 예고편만 보면 마치 서로 다른 두 주인공이 가문의 반대를 극복하며 사랑과 화합을 이뤄 내는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지난달 30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엘리멘탈'은 훨씬 더 이민자 서사, 특히 이민 1세대와 2세대 사이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습니다. '주토피아'보다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에올)'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까요. 디즈니·픽사의 첫 한국계 감독인 피터 손(45) 감독 본인의 경험과 정서가 짙게 깔린 영화입니다.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등 픽사의 대표작에서 스토리 아티스트로 활약하고, '라따뚜이'와 '몬스터 주식회사'에선 목소리 연기를 펼치기도 했던 손 감독은 다른 감독이 연출하다 폐기된 프로젝트를 맡았던 2016년 작 '굿 다이노' 이후, 자신만의 영화에서 가장 개인적인 주제를 풀어냈습니다. 제작진 명단이 올라간 뒤 등장하는 손 감독 부모님의 사진은 영화가 완성되기 전 돌아가신 두 분에 대한 헌사입니다.

영화 ‘엘리멘탈’의 연출 맡은 피터 손(45) 감독.


"저희 부모님은 1960년대 말, 70년대 초에 미국에 이민을 오셨어요. 저도 한국인과 인도인, 멕시코인 등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자랐죠. 아버지는 식료품점을 운영하면서 가게를 찾는 다양한 손님들을 도와주시곤 했어요.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셨는데, 신기하게도 손님들을 금방 이해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보여준 다양한 공동체에 대한 연민은 피터 손 감독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 불, 바람, 흙 등 서로 다른 원소들이 존재하기에 완성되는 영화 속 세계에 대한 묘사와, 모든 걸 데우고 녹이는 재주를 가진 주인공 '앰버'가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 흐름에는 다양성의 가치와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연결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불 종족이 다른 원소들로부터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거나, 주인공이 '우리 말 참 잘한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는 장면 등 이민 문제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은유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영화 ‘엘리멘탈’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물론, '엘리멘탈'의 불 종족이 현실 속 특정 인종이나 국적으로 딱 떨어지게 치환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앰버네 가게 곳곳에 설치된 한국식 고깃집 환풍구와 불 종족의 풍습인 '큰절'처럼 한국인이라면 더 크게 공감할 설정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고 손 감독은 귀띔합니다. 특히 불 종족이 같은 원소끼리의 결혼을 고집한다는 설정이나, 물 종족 '웨이드'가 쩔쩔매며 불 종족이 즐겨 먹는 석탄 간식을 삼키는 장면 등은 감독 본인의 경험이 반영됐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들 앞에서 남기신 유언이 '한국 여자하고 결혼해라' 였어요. 부담감이 엄청났지만, 한국인이 아닌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됐죠. 배우자의 가족을 제 가족에게 소개했을 때 아빠가 온갖 종류의 한국 음식을 준비하셨어요. 그분들이 생전 처음 맛보는 한국 음식을 먹는 걸 지켜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영화에 나오는 장면 그대로요."

다만 인종과 계급 갈등, 이민 2세로서의 정체성 등 다양한 문제를 담아내려다 보니 영화 속 이야기들이 아주 응집력 있게 전개되지 않는 건 단점입니다. 디즈니·픽사 작품답게, 이민자 차별이라는 소재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기보다 개인의 복합적 정체성을 긍정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흐름 역시 누군가에겐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멘탈'은 '픽사 애니메이션'의 틀 안에서 한국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녹여낸 첫 사례로서, 'H 마트에서 울다'나 '미나리' 등 최근 잇따르는 한국계 이민 2세들의 작품들과 함께 들여다 볼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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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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