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스승과 부모가 물려준 `삶의 재산`

2023. 6. 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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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월간객석 발행인

신록의 계절인 5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날이 있어 살아오면서 느꼈던 많은 것들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제가 요만큼이라도 자리를 잡고 살아온 것은 모두 부모님 덕분이요, 스승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학교 때 배운 지식은 시간이 흐르며 거의 잊어버렸지만, 선생님의 따끔한 한마디 말씀이나 주장하셨던 인생관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제 인생의 나침반이 되고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한자를 가르치셨던 선생님께서는 공부는 못해도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그를 통해 저는 정직한 삶을 배웠지요(물론 제가 그분 뜻대로 잘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딸부잣집임을 자랑하면서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매 한번 들지 않으셨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담임 선생님께는 웃음과 사랑을 배웠습니다. 독일어를 교양과목으로 수강하던 대학교 1학년 때, "전공도 아닌 너희들이 독일어 문법을 배워봤자 나이 들면 기억도 안 난다"라고 하시면서 독일 역사와 위대한 인물들을 재미나게 설명해 주시던 교수님. 늘 하얀 양복과 흰 구두만을 고집하셨던 그 멋쟁이 교수님으로부터는 멋과 풍류를 배웠습니다.. 늘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시고 타락한 정치 현실을 탄식하며 우리 부부의 주례를 서주셨던 전공과목 교수님께는 민주와 정의가 무엇인지 배웠지요.

아쉽게도 지금은 모두 작고하셨는데, 생각해보면 이 분들의 가르침 덕분에 제가 세상 한 귀퉁이에서 그나마 사람 노릇 하면서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인 대학교에서는 석·박사 과정으로 전공에 매진하는 학생들이 아니라면, 대부분 졸업과 동시에 둥지를 벗어나 제 살길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음악계는 조금 달라 보이더군요. 어린 시절부터 배운 선생님을 비롯해 대학 시절의 교수님들까지, 그 관계가 매우 끈끈한 것 같습니다.

스승과 제자가 그렇듯 오랜 인연을 이어오는 게 무척 부럽고 좋아 보이긴 합니다만, 한편으론 너무 심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그 스승의 영향력과 배경이 없다면 젊은 예술가들이 자리잡기가 힘든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어린 나이에 큰 뜻을 품고 조기 유학을 가서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음악가들은 국내에서 이끌어줄 스승과 인맥이 없어 동동거리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는 것이죠. 우리 사회의 끈질긴 학연·지연·혈연의 연결고리는 예술계에서 더 심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로지 인성과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그런 세상은 언제쯤 오려는지요.

이런 와중에도 어버이날 기념 공연 때문에 만난 피아니스트 이경숙 선생과 김규연 교수는 남달라 보였습니다. '모녀 피아니스트'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분들이지만, 연주활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한 선후배이자 경쟁자였지요. 그러면서도 건반을 넘어 서로 다정한 눈빛을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군요.

지난달 15일 스승의날에는 김덕기 선생과 홍석원 지휘자가 저희 사무실을 찾아와 즐거운 식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울 음대 사제지간이긴 하지만 학창시절보다 졸업 후 더 끈끈한 정을 맺어온 사이라고 하는데요, 서울 음대 교수를 역임한 김덕기 선생이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홍 지휘자의 능력을 눈여겨 보고, 귀국 후 그의 국내활동에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현재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재직 중인 홍석원 지휘자는 술자리에서도 그런 스승에게 깍듯한 존경심을 보여 지켜보는 저조차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엄격하지만 인자한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제 자리에서 올바르게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며칠 전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세미나 자리에서 예술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서울시향의 차기 지휘자로 세계 최고 수준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을 영입했으니 다음 단계로 여의도공원에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한다는 소식도 전해졌죠.

도시의 이미지를 문화예술을 통해 새롭게 가꾸고 표현하려는 오 시장의 계획은 무척 반갑게 들렸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서울시향의 행정과 운영에 관한 올바른 방향 및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필요한 인재들의 적재적소 배치 등 많은 문제점과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쪼록 서울시향의 새 출발을 응원하며, 많은 시민들이 여의도에서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는 멋진 일도 곧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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