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살가죽, 계급과 자기관리의 표식이 된 [이유진의 바디올로지]

이유진 입력 2023. 6. 6. 18:27 수정 2023. 6. 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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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바디올로지]| 09 _피부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대성당(두오모)의 성 바르톨로메오상.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 대성당에는 온몸의 근육과 뼈만 남은 모습의 으스스한 남자 조각상 하나가 서 있다. 예수의 12사도 중 한명인 성 바르톨로메오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다 피부가 벗겨진 채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 조각상의 성인은 고통스런 얼굴로 어깨와 성기 정도만 겨우 가린 채 커다란 천 같은 것을 등 뒤로 짊어지고 있는데, 바로 자기 살가죽이다.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벽을 장식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도 한손에 축 처진 자기 살가죽을 든 바르톨로메오가 그려져 있다. 이 작품들을 보면 피부가 그저 유한한 인간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피부는 신체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기관이다. 몸을 보호하는 물리적 장벽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호르몬의 분비를 통합적으로 조절하는 내분비기관이다. 인체의 최전선 피부는 늘 바이러스나 세균의 침략에 시달린다. 2019년 한국의 피부질환 환자 수는 1458만명으로, 인구 10명당 2.8명이나 된다. 코로나19 이후 통계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몇년 동안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손 세정제 쓰기가 사회적 규범이 되면서 피부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발진, 물집 등 피부 트러블을 겪는 환자들도 여러 나라에서 보고됐다. 호흡기 질환이 피부에까지 영향을 미친 셈인데, 그도 그럴 것이 한의학에서는 피부가 비위·폐·대장·간·심장 기능과 연관돼 있다고 본다. 서양의학에서도 피부가 장기와 연결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의학자들은 피부를 치료해 다른 장기의 건강을 개선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은 아직도 피부의 세계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벽을 장식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후의 심판> 부분. 성 바르톨로메오가 자신의 살가죽을 들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비로소 만지는 것, 피부 접촉의 위험성을 깨닫게 됐지만 이전까지는 피부 접촉의 이로움을 훨씬 더 강조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스킨십’을 중시한 프랑스 정신분석가 디디에 앙지외는 “자아는 피부다”라고 말했다. 그가 정의한 ‘피부 자아’는 일종의 심리적 싸개 또는 봉투를 가리킨다. 피부 자아가 너무 두꺼우면 우월감에 도취해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갖게 되고, 지나치게 얇으면 버려짐(유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경계선 성격장애나 마조히즘적 성격을 갖게 된다고 앙지외는 설명한다. 미국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도 어린 시절 어머니와 스킨십 결핍이 공허와 부작용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촉각 경험의 중요성을 밝힌 흥미로운 연구였지만 무리하게 이론을 밀어붙인 나머지 엄마와 신체 접촉이 결핍된 아이가 장차 강간범이 되거나 동성애자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빚었다.

동물이 피부 접촉으로 사회화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다른 개체와 피부를 맞대는 경험 속에서 새끼들은 호의와 악의를 구분하게 되고 자신의 매력과 개성을 전달하는 법도 익힌다. 하지만 새끼의 피부 접촉이 어미만의 책임은 아니다. 동물학 연구자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암컷들>을 쓴 루시 쿡은 수컷이 헌신적으로 새끼를 양육한다는 점을 밝힌다. 다수 동물에게 유년기 긍정적인 스킨십은 건강한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정이겠지만, 어미가 ‘독박 육아’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인간 사회에서 피부는 무엇보다 계급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대로, 피부를 통한 ‘구별짓기’가 이뤄진다. 소비사회에서 피부는 강력한 자본이다. 하얗고, 매끄럽고, 탱탱하고, 향기롭고, 달콤하고, 청결하고, (바이러스 없이) 안전한 피부는 부와 권력을 보여준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이 가운데 매끈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콕 찍어 비판한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강아지, ‘풍선 개’로 유명한 작가 제프 쿤스 작품을 한병철은 “매끄러움의 성화(聖化)”라고 표현했다. 쿤스가 만든 ‘풍선 비너스’는 구석기시대 여신상인 ‘빌렌도르프 비너스’를 본뜬 것으로 2003년산 동 페리뇽 로제 빈티지 와인을 출산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소비가 인간을 구원할지니, 매끈하고 빛나는 표면의 풍선 비너스와 동 페리뇽 모자는 소비자본주의 시대의 ‘성모상’으로 추앙받는다.

현대인에게 피부는 몸무게와 함께 가장 중요한 자기관리 영역이다. 피부과, 성형외과에서 생살을 찌르는 고통을 참아가며 점과 기미 같은 잡티를 뽑아내는 일은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를 지녀야 하는 신자유주의의 사도로서 응당 감내해야 하는 수련 과정이다. 상당수 피부과 의원은 피부질환 치료보다 미백과 주름관리를 선호하며 사도들을 영접한다. 특히 여성은 평생 피부를 관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느낀다. 늙어서도 광채와 탄력을 유지하면서 빛나는 피부를 가진 여성은 찬사를 받는다. 피부 과학이 발달하면서 같은 나이라도 피부에 돈을 들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에선 수십년 나이차가 느껴진다. 잡티 없이 깨끗하고 윤기나는 피부는 많은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게 하고 더 좋은 곳, 더 안전한 장소로 그 사람을 안내해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기 이전부터 이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다. 피부 불평등은 젠더와 계급의 문제이고 신자유주의적 분할 통치로 각자 자기영역을 점유하게 된 사람들의 살갗은 서로 맞닿을 일이 없었다.

2022년 3월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서 이주노동자 및 참석자들이 인종차별 근절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국 사회 피부위계 최상의 기준은 색깔이다. 미백 문화를 연구한 박소정은 한국 미디어 문화, 즉 ‘케이(K)-컬처’의 핵심 요소가 미백이라고 말한다. 케이컬처 소비자들은 ‘(까무잡잡한) 이효리보다 (하얀) 이영애’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케이팝 스타들은 새로운 미백의 인종이고 흰 피부의 새로운 인종적, 종족적 위상을 재구성한다고 박소정은 분석했다. 반면 한국 안에서는 ‘짱깨’ ‘똥남아’ ‘흑형’ 등으로 일컫는 멸칭이 속출하고 인종차별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한국의 미백 추구와 유색인종 혐오는 깊은 성찰로 이어지기보다 일본에 이은 ‘아시아 내 명예백인’으로서 피부색 구별짓기에 한층 힘을 기울인다.

성적 쾌락, 폭력, 죽음이 작용하는 장소로서 피부를 살펴보자. 원치 않는 타인의 피부가 닿는 성폭력은 수치심인지 분노인지 둘 다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을 일으킨다. 피해를 봤지만 되갚지 못하고 자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피부를 훼손함으로써 적개심을 해소한다.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해치고, 사회적으로 용인받지 못하는 욕망을 가진 자신을 처벌한다. 팔목이나 팔뚝 등에 상처를 내어 자해하는 사람 중 다수가 상처를 그림으로 승화하는 ‘커버 업’ 문신(타투)을 선택한다. 그림이 있다면 다시 자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생존을 위한 노력이다.

피부는 자신을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려는 캔버스로도 쓰인다. 눈썹, 속눈썹, 입술, 두피 등에 그림을 그리는 반영구화장은 성별불문 한국에서만 1000만명 이상이 선택한 미용문화다. 서화 문신은 일본의 야쿠자, 조직폭력배나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여전하지만 이제 패션의 일부처럼 인식된다. 한국 여성 타투에 관한 책들을 보면, 안쓰럽고 대견한 마음이 교차한다. “내가 있을 좌표”로, “합리적 자학”으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위해, “친족 성폭력 생존자인데 너무 살고 싶어서”,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싶어서”,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새기려고, “규범에 저항하는 한편 규범을 욕망하는 모순 속에서” 이들은 타투를 갖게 됐다. 주체적인 선택이었지만 목욕탕 입장을 거부당하거나 걱정하는 말도 종종 듣는다. 후회할 때도 있지만 인생의 수많은 후회 중 하나일 뿐이고, 시술할 때 아프지만 인생보다 아프지는 않다고 말한다. (<한국 여성 타투 이야기>, <가장 밝은 검정으로> 가운데)

피부는 인간사를 담는다. 자신을 파괴하려는 충동에서 비롯한 흉터, 뙤약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 나이 듦에 따라 생긴 검버섯과 기미도 모두 인생의 일부다. 쭉쭉 늘어나는 할머니의 피부를 잡아당기며 놀던 기억, 좋아하는 사람의 손끝이 처음 닿았을 때의 흥분, 원치 않는 피부 접촉에 진저리치게 끔찍한 기억들까지 모두 삶의 흔적이다.

피부는 많은 것을 말해주지만, 더 많은 것을 감춘다. 얼마 전 흑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보던 한 백인 아이가 “인어공주가 괴물 같아”라고 말해서 극장이 난장판이 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아이에게 사실을 전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아이야, 인어공주는 반인반어의 괴물이 맞아. 하지만 기억하렴. 네가 사는 시대의 괴물들은 하얗고 매끈하며 심지어 정의롭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네가 예기치 않은 비극 속에서 별안간 취약해질 때 손을 내밀 사람은 ‘괴물’이란 이름의 약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사람의 피부엔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이유진 |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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