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인어공주 공분, 왜 한국인이?

2023. 6. 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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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디즈니의 새 영화 '인어공주'가 역대급 논란에 휩싸였다. 그런데 현재 56만 관객에 불과하다. 본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논란이 역대급으로 커진 것은 안 보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작품 기획 단계 때부터 누리꾼들의 공분이 쏟아졌었다. 그것이 개봉한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인어공주'와 디즈니에 대한 성토가 끊이지 않는다.

주인공으로 흑인을 캐스팅했다고 알려지면서 공분사태가 일어났다. 최근 디즈니가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를 추구하면서 여성이나 유색인을 많이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너무 과하다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흑인 인어공주도 비난한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 이래 백인우월주의는 항상 문제였다. 디즈니는 백인우월주의를 전파하는 총본산격인 회사였다. 그 회사가 과거를 반성하고 잘못을 시정한다는데 왜 한국인이 공분한 걸까?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사태였다.

한편에선 인종 문제를 언급하는 게 정당성이 없다는 걸 눈치 챘는지 요즘엔 다른 논리가 등장했다. 못 생긴 주인공을 캐스팅한 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인어공주' 논란이 인종문제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정말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PC 얘기는 왜 나왔단 말인가? PC가 거론됐다는 것 자체가 이 논란이 인종논란이었다는 걸 의미한다.

인종으로 비난하는 게 정당성이 없다는 걸 깨달은 후 과거 세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은 인종으로 비난하는 무개념인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찾은 논리가 못 생긴 게 잘못이라는 외모 이슈라는 게 황당하다.

인종 차별도 문제고 외모 차별도 문제다. 주인공의 외모가 싫을 순 있다. 그건 각자의 자유다. 그렇게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과 이걸 사회적 시비의 차원에서 문제제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지금 문제는 많은 누리꾼들이 디즈니가 못 생긴 주인공을 캐스팅한 것은 잘못이라고 규정하면서 공분한다는 점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콘텐츠 기업은 일반적으로 대중이 선호하는 외모의 주인공을 캐스팅한다. 광고 모델의 가장 전형이 '뷰티'이기도 하다. 인간이 뛰어난 외모를 매우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외모가 뛰어난 연예인을 내세워 막대한 돈을 벌어왔다. 반대로 대중이 선호하지 않는 외모를 내세우는 건 폭망의 지름길로 기업이 절대 꺼리는 일이다.

그런데 디즈니가 매우 놀랍게도 기획 단계에서부터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신호가 무수히 쏟아진 배우를 주인공으로 꿋꿋하게 밀어붙였다. 상업적 기업이 아닌 시민단체 같은 행보다. 기업들이 대중이 선호하는 외모의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외모지상주의를 부채질하는 게 문제였다. 디즈니가 모처럼 반대 선택을 했다고 느꼈으면 박수를 쳐줄 일이다.

대중이 주인공을 선호하지 않으면 어차피 시장에서 처벌 받는다. 보기 싫어서 안 보는 건 자유다. 그것과 별개로 사회적 담론장에서라도 비상업적 선택을 한 부분에 대해선 인정을 해줄 만하다. 이런 선택이 외모지상주의, 미적 가치의 획일화를 조금이나마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부 누리꾼들은 공분하며 디즈니가 못 생긴 주인공을 캐스팅한 게 잘못이라고 했다. 못 생겼다는 말은 공론장에서 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어느 정도는 주관적 영역이기도 하고, 특히 외모 차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모에 대한 우열 판단은 사적인 자리에서나 할 말이지 공론장에서 시비 가리며 할 말이 아니다. 이런 말을 공론장에서 부끄러움 없이 쓴다는 게 일단 문제다. 그리고 '나는 주인공이 싫다'는 주관적 차원이 아니라 '디즈니가 잘못했다'는 객관적 판단까지 나아가는 것도 문제다.

'인어공주'에 대한 공격이 마구잡이식으로 이어지면서, 백인은 예쁜 사람 캐스팅하고 흑인은 못 생긴 사람 캐스팅해서 교묘하게 백인을 우대하는 게 문제라는 논리도 나왔다. PC를 안 해서 문제라는 것이다. 흑인 캐스팅은 PC를 해서 문제라더니 뒤죽박죽이다. '인어공주'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크기 때문에 무조건 공격할 논리를 동원하다가 스텝이 꼬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분노가 폭발하면서 인터넷에서 사회적 공분 차원으로까지 발전했다. 이게 미스터리다. 백인우월주의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백인, 또는 작품의 상업성을 걱정하는 디즈니 소유주라면서 화가 날 법도 하다. 기존 기득권체제에서 약자에 속하는 식민지 출신 황인의 나라 한국의 일반인들이 왜들 그렇게 화를 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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