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이 외친 ‘원 모어 띵’, 456만원짜리 애플 ‘MR 헤드셋’

이재덕 기자 2023. 6. 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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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에서 열린 연례세계개발자회의에서 기자들에게 MR 기기인 ‘비전 프로’ 등 새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AFP/Photo by Josh Edelson)

애플이 9년 만에 신제품을 공개했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능을 지원하는 혼합현실(MR) 헤드셋이다. 기존에 출시된 제품들과 달리 신체 동작과 음성만으로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고,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다. 한화로 400만원이 넘는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공간 컴퓨팅 시대를 여는 ‘제2의 아이폰’이 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애플은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파크에서 연례세계개발자회의(WWDC)를 열고 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선보였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행사 시작 1시간 뒤 마지막 순서로 소개할 제품이 하나 더 있다며 손가락 한 개를 들어 보였다. 그가 “원 모어 띵(하나 더 있다)”이라고 말하자 장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원 모어 띵’은 애플 공동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주목할만한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되뇄던 말이다. MR 헤드셋은 전체 행사 시간의 3분의 1인 40분 동안 집중적으로 소개됐다.

애플의 MR 헤드셋 ‘비전 프로’. 애플 제공.

비전 프로는 스키 고글 모양으로 생겼다. 착용하면 다양한 앱과 창이 떠 있는 화면이 보인다. 비전 프로 안쪽에 장착된 우표 크기의 마이크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2개로 인해 2300만 픽셀 수준의 선명한 화면이 눈 앞에 펼쳐진다. 비전 프로는 메타 등 경쟁사 제품들과 달리 별도의 컨트롤러가 없다. 오로지 눈과 손, 음성을 통해 앱을 실행하거나 창을 이동시키는 조작이 가능하다. 손가락 두 개를 꼬집듯이 쥐면 앱이 선택되고, 손가락을 위로 올리면 스크롤이 되는 식이다. 인공지능(AI) 비서 시리를 통해 음성 명령을 내리고, 눈을 움직이는 수준으로도 앱을 작동할 수 있다.

비전 프로를 착용했을 때 보이는 화면. 실제 공간와 앱이 함께 보인다. 애플 제공.

앞서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했을 때도 터치펜을 없애고 손가락만으로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직관적이고 간편한 조작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결과였다. 애플은 비전 프로 안쪽에 눈동자 움직임을 감지하는 카메라 4대와 LED 광원을, 바깥쪽에 손가락 움직임을 감지하는 카메라 8대와 적외선 광원을 장착했다.

애플이 5일(현지시간) 공개한 MR 기기 ‘비전 프로’. 애플 제공

비전 프로는 PC나 스마트폰이 수행하는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창을 띄운 뒤 각각의 창을 확대하거나 줄이고, 아래위 또는 앞뒤로 이동시키는 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왼쪽 창에 주요 일정이나 약속을 메모한 창을 크게 띄우고, 가운데 창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오른쪽 창에는 노래를 틀어놓는 식이다. 문서 작성 시에는 가상 키보드를 띄우거나 블루투스로 휴대용 키보드를 연결해 타이핑할 수 있다. 팀 쿡 CEO는 “당신의 주변은 무한한 캠퍼스가 된다”며 “어디서나 앱을 사용하고 원하는 크기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VR 등의 컨텐츠를 즐기는 모습. 애플 제공

눈 앞의 공간과 콘텐츠가 함께 보이는 AR 환경을 즐기다가 콘텐츠 자체에만 몰입하고 싶다면 헤드셋 오른쪽에 달린 작은 다이얼을 돌려 VR 환경으로 전환하면 된다. VR 환경에서는 전면 디스플레이가 불투명하게 변한다. 이때 누군가 앞에 다가오면 디스플레이가 투명하게 바뀌면서 다가오는 사람과 눈맞춤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경쟁사 제품들이 사용자의 눈을 가리는 행태로 만들어져 주변인과의 상호작용이 어려운 점을 개선했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VR을 즐기는 중에 누군가 다가오면 전면 디스플레이가 투명하게 변하면서 다가오는 사람과 눈을 마주칠 수 있다. 애플 제공

비전 프로의 가장 큰 장점은 애플 생태계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기존 애플 기기와 연동이 가능하고 이들 기기에 탑재된 앱도 호환된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페이스타임(영상) 통화를 하면 상대방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비친 모습이 눈앞에 실물 크기로 보인다. 공간 음향도 적용돼 상대방의 음성을 바로 옆에서 듣는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비전 프로는 100개 이상의 게임과 ‘콘텐츠 왕국’인 디즈니 플러스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지원한다. 기존 제품들이 킬러 콘텐츠가 부족해 시장의 호응을 얻지 못한 점을 고려한 조치다.

애플은 비전 프로에 ‘M2’와 ‘R1’으로 불리는 2개의 칩을 탑재했다. M2가 연산을 처리하는 기기의 두뇌라면, R1은 카메라와 센서 등에서 받은 정보를 디스플레이에 빠르게 보여주는 칩이다. M2와 R1 출시를 기점으로 MR 헤드셋을 겨냥한 새로운 반도체 시장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그 밖에 비전 프로는 외장형 배터리를 사용하면 최대 2시간 지속된다.

업계에서는 비전 프로의 등장이 MR 헤드셋 시장 활성화를 넘어 모바일 혁명에 준하는 새로운 필수품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팀 쿡 CEO는 “오늘은 컴퓨팅 방식에 있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며 “맥이 개인용 컴퓨터를,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팅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비전 프로는 우리에게 공간 컴퓨팅을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비전 프로는 내년 초 미국 시장에서 정식으로 출시된다. 가격은 3499달러(약 456만원)로 책정됐다.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부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행사 전날까지 우상향하던 애플 주가가 행사 직후 소폭 하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애플의 마케팅 능력은 소비자가 스마트폰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설득했지만 이 제품은 (비싼 가격 탓에) 애플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가 될 것”라고 평가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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