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를 발굴하라" 북적 … 유럽 마트는 PB비중 80% 훌쩍

홍성용 기자(hsygd@mk.co.kr) 2023. 6. 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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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최대 PB상품 박람회 르포
고물가에 소비자 대안 부상
韓기업 PB비중은 10% 안팎
'자체상품' 아이디어 얻으려
125개국 2600개社 장사진
노브랜드 "올 출시 250개 중
130여개 상품 해외서 들여와"

◆ PB상품 전쟁 ◆

지난달 23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PLMA 박람회가 유통기업과 제조업체 관계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암스테르담 홍성용 기자

"이 별사탕이 박힌 쿠키는 우리에게 없는 거네요. 한국 기업과 상품을 만들어본 적 있으세요?" 지난달 2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 최대 박람회인 '국제 프라이빗 라벨(자체브랜드·PL) 박람회(PLMA)'에서 이마트 노브랜드 해외소싱담당의 눈이 번뜩였다. 류성신 이마트 가공소싱팀 부장은 이곳에서 처음 만난 베이커리 회사 '반덴버그 크래프트 베이커리'의 담당자와 명함을 교환하고 이 회사서 판매하는 과자 샘플 다섯 팩을 받았다. 류 부장은 "노브랜드에 아직 없는, 상품화할 만한 제품을 엄선한다. 이틀 동안 만나는 회사만 수백 여 곳"이라고 밝혔다.

고물가 트렌드가 일반화하고 소비자들이 한층 더 양질의 PB 상품을 요구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전 세계 유통기업들은 자체 브랜드로 이끌 제조업체 모시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유통기업의 해외소싱담당 바이어들은 유럽과 미국, 동남아, 중동에 이르기까지 동분서주하며 아직 들여오지 못한 특색 있는 상품을 찾아 헤맨다.

네덜란드서 매해 열리는 PLMA가 대표적인 새 상품 발굴의 장이다. 코로나19로 2년간 열리지 못하다가 지난해부터 행사가 재개됐다. 지난달 23~24일 이틀 동안 전 세계 125개국 2600여 개 글로벌 유통기업과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제조업체가 참여해 북적였다. 과자, 음료, 가공식품, 조리식품, 건강식품, 유제품, 축산물 등 주요 카테고리 곳곳을 3만여 명의 관계자가 돌아다녔다. 이마트가 몇 해 전 PB 브랜드 피코크 상품을 박람회에 출품해 소개했고, 롯데마트는 지난해 론칭한 신규 HMR 브랜드 '요리하다' 상품을 올해 내놨다.

노병간 노브랜드 상품담당은 "올해 출시할 250개의 신상품 중에 해외에서만 130여 개를 소싱한다. 이 중 20~30%가 유럽에서 구해오는 것"이라며 "유럽, 동남아, 중동까지 고객의 구미를 당길 만한 차별화 상품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

상품을 발굴하고 현지 공장을 답사하기 위해 1년에만 수십여 회 비행기를 타는 것은 기본이다. '해쉬브라운' '티라미수' '에그타르트' 등 노브랜드의 대표 상품들이 이 같은 방법으로 벨기에, 이탈리아, 포르투갈서 직접 들여온 제품이다.

한국 유통 기업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PB 상품을 찾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마트 3사 기준으로 PB 브랜드의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9~10% 수준에 그친다. 이마트가 지난해 16조9000억원의 매출을 냈는데, 이 중 대표 PB인 노브랜드와 피코크 비중은 10% 수준이었다. 홈플러스의 '홈플러스시그니처' 등 주요 PB 브랜드 매출비는 지난해 기준 9%, 롯데마트는 10% 안팎에 그쳤다.

이는 유럽과 미국 등 PB 상품의 비중이 최대 95%에 달하는 곳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숫자다. 미국 컨슈머데이터 기업 뉴머레이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기준 독일계 PB 전문점인 리들(Lidl)은 판매 상품의 95%를 PB상품으로 구성했고, 알디(ALDI)도 82%에 육박했다. 미국의 식료품 회사인 트레이더 조(Trader Joe's)는 58%, 미국 슈퍼마켓 체인인 웨그먼스(Wegmans)는 52%, 국내에 입성한 회원제 창고형 매장 코스트코의 PB 비중도 33%에 육박한다.

1960~1970년대 시장에 나타나 전 세계에 1만곳 이상의 매장을 갖고 있는 리들과 알디는 일반 브랜드보다 20~50% 저렴한 PB 상품으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하드디스카운트스토어(HDS)로 통한다. 2011년 유럽 경제위기로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 유럽의 소비자들이 PB 상품으로 눈을 돌렸고, 싸지만 품질이 나쁘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시장 지배자로 급성장했다. 지난해와 올해 한국에서의 고물가 트렌드와 유사한 상황이 유럽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특히 이들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였다. 매장에서 잘 팔리는 품목 위주로 상품 수를 확 줄였고, 품목별로 1~2개 종류의 상품만 판매한다. 평균 1500~3000개 수준이다. 상품은 박스째로 진열하고, 매장 근무 인원을 최소화해 인건비 부담도 낮췄다. 이를 통해 최대한 상품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이는 데 투자했다.

실제로 리들에서 판매하는 제조업체(NB) 상품인 오레오 300g의 가격은 2.24유로인데, 리들 PB '손데이'의 오레오 상품 가격은 270g에 1.59유로였다. 알디에서도 코카콜라 1.5ℓ 한 병은 2.39유로였지만, 알디의 자체 브랜드 '리버'의 콜라는 같은 용량이 0.71유로에 불과했다. 이마트 노브랜드에서도 PB 오레오 상품인 쿠키앤크림샌드(720g)는 3480원으로 NB 상품 대비 48% 저렴했고, 콜라 1.5ℓ(980원)는 타사 상품 대비 68%까지 쌌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PB 상품 인기와 관련해 "기업은 양질의 상품을 제공할 자신감이 생겼고, 소비자는 낮은 품질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물건을 살 신뢰가 생겼다"면서 "유통 기업 입장에서는 PB 상품을 찾는 소비자층만 확보된다면, 결국 NB 상품 몇 개 파는 것보다 더 큰 이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스테르담 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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