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영칼럼] 국가의 시계 … 100년 vs 5년

김대영 기자(kdy@mk.co.kr) 2023. 6. 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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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시계 가진 美·日·中
불과 5년짜리 시계 찬 한국
韓은 前정권과 단절 악순환
이제는 질문 자체를 바꿔야
지지율 아닌 국익 물어야

최근 한 모임에서 만난 주한 외국 대사는 "대한민국은 참 신기한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나라가 들어선 느낌이고 공공기관과 대기업들도 바뀐 정권에 맞춰서 신속히 재정렬한다"고 평가했다.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신생국이 탄생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 발언을 반박할 논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이 수명이 5년짜리인 국정 운영 시계를 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모 인사는 "대통령실 근무자들의 마음속 달력은 5년짜리"라고 털어놨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 나라인 미국·일본이나 공산당 일당 독재국인 중국이나 똑같다. 이들 국가는 제국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으며 그만큼 국정 운영 시계의 수명이 길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반도체 육성 정책을 발표했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이것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트럼프 정부에서는 여기에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까지 구사했으며, 바이든 행정부는 이 정책까지 이어받았다. 여야를 따지지 않고 국익을 위해서라면 초당적으로 뭉치는 미국의 정체성을 보여줬다.

일본은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 아주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자민당이 계속 집권해오고 있다. 정권을 장기간 장악해온 자민당은 일관되게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1921년 창당한 중국 공산당은 100년이 넘는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다. 철저한 주민 감시 체계를 갖춘 중국은 앞으로도 자국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고작 수명이 5년인 시계로 국정을 운영해온 한국은 근시안적인 단기 성과에 치중했다. 장기적 국익보다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에만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해외 자원 개발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자원 빈국에서 벗어나겠다며 시작된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그 후 미운 오리 새끼 신세가 됐다. 그러나 100년짜리 시계를 가진 중국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를 돌면서 배터리를 비롯한 신산업의 원자재가 될 니켈을 비롯한 희소 금속 광산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만든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나 녹색기후기금(GCF)은 그 후 외면당했다. 녹색성장 패키지로 키웠다면 지금쯤 한국은 탄소중립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가로 변모해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 때 공을 들인 창조경제와 원자력발전 진흥 정책을 폐기했다. 한일 위안부 문제에 합의하고 설립한 화해와치유재단도 해산시키면서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한국의 5년짜리 시계의 폐해인 전체 최적이 아닌 부분 최적의 부작용이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역대 한국 정권은 왜 근시안적 단기 성과에 집착했을까. 아마도 한국의 청와대나 여야 정치인들이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과연 이 정책이 정권 지지율에 유리할까"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종전 정책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새로운 포장지에 싸인 새 정책을 내놓는다. 사고가 터지면 잘못된 시스템은 그대로 놔둔 채, 희생양을 찾아 처벌하고 끝내고 만다. 정책은 정권마다 단절되고 설익은 정책들이 계속 쏟아진다.

앞으로는 국가의 중요 사안에 대해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이게 나라의 미래 100년에 도움될까?" 정치인에게 던지는 질문도 '장기적 국익' 기준으로 바꿔야 한다. 100년 시간표로 질문할 때, 비로소 한국도 100년짜리 시계를 가진 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김대영 부국장(산업부장 겸 지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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