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할매니얼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카페는 할머니 집 안방에나 떡하니 있을 법한 '자개장'으로 벽면이 장식돼 있다. 중장년층이 보면 "이 구닥다리 골동품이 왜 여기에 있나" 싶겠지만, 자개가 빼곡히 박힌 이 화려한 '할머니 집 유물'에 젊은 층은 '힙하다(유행에 밝고 신선하다)'고 환호한다고 한다. 유행이 지나 집 앞에 버려졌던 자개장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다시 생명을 얻은 것이다.
할머니와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 접점이라곤 없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만나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폭발했다. 일명 '할매니얼'. 할머니들이 먹고 입고 사용하던 제품 취향에 밀레니얼 세대가 빠져들면서 열풍이 만만찮다.
할매니얼 먹거리 중 대표적인 것은 약과. 제사상에 주로 올랐던 약과가 핫한 디저트로 부활했다.
경기도의 한 한과업체가 생산한 약과가 인기를 끌며 품귀현상을 빚은 게 '약과 열풍'의 시작이었다. 약과를 사기 위해 오픈런이 벌어지면서 '약케팅(약과+티케팅)'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처럼 약과 구매가 어렵다는 뜻이다. 인스타그램에 약과를 검색하면 9만여 개의 게시물이 뜰 정도다. 약과 브라우니, 약과 와플 등 변주한 제품 사진도 줄줄이 올라온다.
2030세대가 흑임자, 쑥, 팥 등 전통 식재료에도 관심을 보이면서 식품업계는 앞다퉈 할매니얼 푸드 출시에 나섰고, 시니어 모델까지 기용하고 있다. 패션업계에서도 꽃무늬 롱스커트, 알록달록 고무줄 팬츠 등 일명 '할미룩'을 내놓으며 '뉴트로(신복고)' 열풍에 올라타고 있다. 1970년대 해외에서 소녀들이 할머니 세대인 1920~1930년대 여성복을 재해석한 패션 '그래니 룩(Granny Look)'에 열광한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부모 세대를 '꼰대'라고 부르는 2030세대가 할머니 감성에 스며들게 된 이유는 뭘까. 옛것을 촌스럽다고 여기는 중장년층과 달리 이들에겐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전통의 재해석, 재평가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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