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법은 정치가 아닌 과학의 영역이다
우리나라에서 법이 만들어질 때 정치의 힘이 너무 막강하다. 간호법 사태는 일종의 입법파동이다. 야당 다수결과 의료단체의 압박 및 단식, 그리고 대통령 거부권이 입법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만약, 건물을 지을 때 환경영향평가를 하듯이 법률을 만들 때도 정치·사회·경제적 영향과 기대효과에 대한 예측분석을 의무적으로 한다면 지금보다는 좋은 법률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제 법률은 정치의 영역만이 아닌 과학의 영역에서 꼼꼼히 챙겨야 할 때가 됐다.
◇입법영향분석의 법제화는 국가발전의 신동력이다
‘법의 과학화’는 국회의 싱크탱크로, 입법지원 최대·최고 소속기관인 국회입법조사처의 제1 임무다. 미국 CRS, 유럽 EPRS와 같은 한국의 NARS(National Assembly Research Service)의 등장은 대한민국 입법체계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지원하라는 것인데, 향후 그 핵심사업이 입법영향분석이다.
입법영향분석 제도는 의원입법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법안이 미칠 영향을 미리 또는 사후에 평가 및 분석해 의원들의 입법을 과학적으로 제도적으로 자문하는 것이다. 현재 발의되고 있는 법률 중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영향을 평가해 보면 잘못된 것도 있고 낭비적인 것도 있다. 법만 잘 만들어도 사회적 비용이 몇백조원 심지어는 1000조원 이상의 누수 현상을 막을 수 있다.
현실은 법률이 과학적 검증과정 없이 당론과 당파성에 의해서 만들어지면서 위헌의 소지가 있는 법률과 위법적 시행령의 출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전체 발의 법률 중 의원입법이 97%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법률이 과학적 검증과정 없이 제안되는 경우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즉, 입법과정에서 입법영향분석의 법제화가 불가피한 시점에 온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제21대 국회에서 8건의 입법영향분석 법률안이 계류 중이며, 이 중 7건의 법률안이 입법영향분석의 수행 주체로서 국회입법조사처를 적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태년 의원 대표발의안과 윤재옥 의원 대표발의안 등 여야의 법률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가장 최근에 발의된 홍석준 의원 대표발의안에서도 영향분석의 수행주체로서 입법조사처를 적시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회입법조사처는 규제영향분석을 포함한 입법영향분석을 실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향후 여야간 대화와 타협과 함께 과학적 검증을 통해 생산된 법은 한국사회의 법치주의를 진일보시킬 것이며, 입법영향분석의 법제화는 대한민국 발전의 신동력이 될 것이다.
◇입법과 국정감사 지원은 입법조사처의 주요 임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통상적 임무는 국회의 위원회 또는 국회의원이 요구하는 사항의 조사·분석 및 회답, 입법 및 정책 관련 조사·연구 및 정보의 제공, 입법 및 정책 관련 자료의 수집·관리 및 보급, 국회의원연구단체에 대한 정보의 제공, 외국의 입법동향의 분석 및 정보의 제공 등이 있으나, 소위 국회 싱크탱크로서 자리매김을 제대로 하기 위한 많은 보완과 수정 그리고 추가사업들이 있다.
최근 출범한 ‘국가비전입법정책포럼’ 자문기구는 개헌과 정치개혁, 입법영향분석과 선진입법체계 구축, 인구위기 및 지방소멸 대응을 핵심사업으로 하고 있고, 특히 입법영향분석의 법제화에 업무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에 해왔던 사업이지만 국회의 3대 기능을 꼽자면 입법·예산·국정감사 등이 있는데, ‘국정감사 이슈 분석’ 사업을 보다 본격화하여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국회의 국정조사에 크게 기여하고자 힌다.
‘국정감사 이슈 분석’은 해마다 국정감사 대상에 대한 분야별 정책이슈와 전년도 국정감사 시정 및 처리 결과를 분석·평가해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정 전 분야에 대한 입법·정책 전문연구기관인 국회입법조사처는 2009년부터 매년 국정감사를 대비한 종합보고서인 ‘국정감사 이슈 분석’을 발간해오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100여 명의 전문 입법조사관이 약 3개월에 걸친 공동작업으로 작성된다. 정치행정·경제산업·사회문화 국정 전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하고도 폭넓은 현안에 신속하게 대응해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정책에 대해 부처별·분야별 현안 및 쟁점 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제시한다.
◇입법조사처의 실력은 입중된 만큼 앞으로는 언론 홍보 확대·확산이 필요하다
국회입법조사처 업무의 상당 부분은 국민과 국회의원 및 정부부처 관계자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따라서 조사처에서 생산되는 보고서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구성원들에게 홍보활동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하고, 언론과의 접촉을 확장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언론접촉 방식과 순서의 업무 매뉴얼을 바꾸고, 조사처 내에서 언론보도와 사회적 반응의 성과를 포상하기 위해 ‘나이스 나르스(Nice NARS)’ 상을 만들었다.
이 상은 정량평가-정성평가의 2단계를 거쳐 선정하게 되는데, 먼저 정량평가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빅데이터시스템인 빅카인즈(BIG KINDS)를 활용, 54개 언론사의 기사를 분석·집계한다. 정성평가는 포상심사위원회에서 ① 보도된 언론사의 영향력, ② 해당 보도에서의 인용 비중, ③ 보고서 인용의 지속성·생명력 등을 기준으로 개별 위원의 검토와 토론, 합의를 통해 진행한다.
국회의 핵심 소속기관인 국회입법조사처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감이 충만되고 서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일터로 자리잡아갈 때, 국회와 국가의 좋은 미래를 밝혀주리라 확신한다.
박상철 국회입법조사처장 palma21@hanmail.net
〈필자〉박상철 제9대 국회 입법조사처장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고, 1998년부터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했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과 국회혁신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정치법학연구소 소장과 경기대 한반도전략문제연구소 소장, 미국헌법학회 회장 등 역임 중이다. 국회의장 소속 헌법개정및정치제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도 겸임하고 있다. 2023년 4월 입법조사처장으로 부임한 박 처장은 “입법정책은 과학의 영역으로, 입법조사처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국회 공신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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