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빅3의 이유 있는 '에일' 맥주 잔혹사
2010년대 초 에일 브랜드 내놨다가 모두 단종
수입·수제맥주 개성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맥주 기업은 세 곳이 있습니다. 국내 1위 맥주 브랜드 카스를 생산하는 오비맥주, 하이트와 테라를 만드는 하이트진로, 클라우드를 만드는 롯데칠성이죠.
이 세 맥주 회사가 만드는 맥주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라거'라는 겁니다. 라거는 '하면발효맥주'라고도 불리는데요. 청량하고 탄산감이 강한 맛이 특징입니다. 우리가 '맥주' 하면 떠올리는 그 맛이죠.
반면 '상면발효맥주'인 에일은 쌉싸름한 풍미가 돋보이는 맥주로 라거보다 맛과 향이 진한 편입니다. 국내 맥주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수입맥주와 수제맥주는 에일의 비중이 만만치 않은데 비해 대기업 국산 맥주는 '100% 라거'라는 건 좀 특이하죠. 어쩌다 한국 대표 맥주는 죄다 '라거'가 된 걸까요.
우리나라 맥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정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맥주가 소개되기 시작한 건 1800년대 말 일본을 통해서입니다. 이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1930년대엔 일제가 조선에 맥주 공장을 짓게 되죠. 지금의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 모두 뿌리는 일제가 조선에 지은 맥주 공장에 있습니다.
일본도 예나 지금이나 라거가 대세입니다. 아사히, 삿포로 등 우리가 좋아하는 일본 맥주도 대부분 라거죠. 일본에 맥주 문화를 가져온 미국의 영향입니다. 결국 미국의 '아메리칸 라거'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게 된 거죠. 국내 맥주 시장은 시작부터 '라거'로 시작한 셈입니다.
사실 대기업들이 에일 맥주를 전혀 안 만들어 본 건 아닙니다. 2010년대 들어 양질의 수입맥주가 들어오면서 에일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라거와는 맛의 결이 아예 다른 에일을 처음 맛본 소비자들은 "왜 국내 주류기업들은 이런 걸 못 만드나"라는 비판을 쏟아냈죠.
이에 하이트진로가 먼저 에일을 선보입니다. 2013년 내놓은 '퀸즈에일' 2종입니다. 국내 주류 대기업이 자체 개발한 에일 맥주를 선보인 건 퀸즈에일이 처음이었습니다. 맛 평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엔 오비맥주가 '에일스톤'을 내놓으며 에일 경쟁에 뛰어듭니다. 수입맥주 시장에서 에일의 인기에 더해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까지 나란히 에일을 내놓으면서 시장이 커질 것이란 기대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의 인내심은 길지 않았습니다. 오비맥주가 출시 1년 만인 2015년 판매 부진을 이유로 에일스톤을 단종시켰습니다. 하이트진로도 2016년 퀸즈에일을 단종시키며 짧은 실험을 끝냈습니다. 롯데칠성의 경우 맥주 시장에 진출한 게 2014년으로, 에일을 내놓을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클라우드' 1개 브랜드만을 운영하고 있죠.
양 사가 에일 라인업을 빠르게 접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생각보다 점유율이 빠르게 늘지 않았습니다. 2016년 에일 맥주 시장 규모는 전체 맥주의 5%에 불과했습니다. 대량생산이 핵심인 대기업 주류회사들로서는 너무 적은 수요였죠. 이미 수입 에일이 크지 않은 에일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 파이를 나눠먹기 위해 공장을 돌리는 게 부담스러웠다는 겁니다.
규제 완화로 인해 다양한 수제맥주 브루어리들이 특색있는 에일을 만들어내게 된 것도 대기업들이 에일에서 손을 떼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작은 시장에 경쟁자가 난립하니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의 대기업 입장에선 매력적인 시장이 아닌 거죠.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한 차례의 실패 이후 '잘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꿉니다. 하이트진로는 이후 필라이트, 테라, 켈리 등 레귤러 맥주 라인업을 집중적으로 강화합니다. 오비맥주 역시 카스, 한맥, 오비라거 등 라거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에일을 아예 놓아버린 것은 아닙니다. 오비맥주의 경우 모회사인 AB인베브가 운영하는 다양한 에일을 수입·국내 생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호가든·구스아일랜드 브랜드를 통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제품을 국내 단독으로 선보이는 등 에일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복고 콘셉트의 한정판 '크라운맥주'를 에일 타입으로 내놓으며 시장 반응을 지켜봤습니다. 언젠가는 국내 주류 기업이 만든 K-에일이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 줄 날이 올까요. 이들의 다음 도전을 기대해 봅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