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개가 너무 많다
최근 동물들이 잔혹하게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3월, 경기 양평군에서 한 60대 남성이 개, 고양이 1,200마리 이상을 굶겨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남성은 반려동물 생산업체, 이른바 ‘강아지 공장’에서 번식에 사용되다가 번식 능력을 잃어 상업적 가치가 없어진 동물들을 1만원에 넘겨받아 처분하는 처리업자였다. 법원은 범인에게 동물학대범 최고형인 징역 3년형을 내렸다. 지난 28일, SBS ‘TV동물농장’은 ‘안락사 없는 보호소’, ‘분양소’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파양업체의 동물 수십 마리가 매장된 사건을 전했다. 업체가 반려동물을 기르다가 더 이상 기를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죄책감을 이용해 수백만원의 파양비를 받은 뒤, 동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두 사건은 많은 숫자의 동물들이 굶어 죽거나, 생매장이라는 극도로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는 점에서 ‘학살’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잔혹성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피해 동물들이 급속도로 규모가 커진 반려동물 산업의 이면에 가려진, ‘남겨진 동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동물들의 피해를 정말 예상하지 못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정부 허가를 받은 반려동물 생산업장은 총 2,116곳, 신고된 판매업장은 총 3,760곳에 이른다. 무허가 업체를 합하면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굳이 숫자를 확인할 필요도 없다. 태어난 지 2~3개월 밖에 되지 않은 품종견, 품종묘가 온라인과 펫숍 쇼윈도를 메우고 있다는 사실은,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내는 인형이 아닌 이상 어딘가에서 어미 개, 어미 고양이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지난해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이제 노화나 질병이 있는 동물을 유기 또는 폐기 목적으로 거래하는 경우 3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번식장에서 태어난 개, 고양이가 경매를 거쳐 펫숍으로 유통되는 산업 구조 자체를 허용하고 있다. 번식장에서 태어나는 동물의 숫자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의무적으로 갖춰야 하는 인력 기준이 개, 고양이 50마리 당 1명인 것만 봐도 집단 사육 자체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돈이 되는 동물의 처우도 열악한 마당에, 상품 가치조차 잃은 동물들의 삶이 어떤 수준일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처리업자에게 넘기지 않는다고 해서, 번식장에서 늙고 병든 채로 죽을 날만 기다리게 하는 것도 동물에게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독일의 경우 2022년부터 ‘연방 동물복지조례’(Tierschutz-Hundeverordnung)를 개정해 개 번식 규제를 강화했다. 한 브리더당 총 5마리, 새끼가 있는 모견일 경우 3마리까지만 한 번에 돌볼 수 있다. 사육 환경뿐 아니라 야외 운동, 사람과의 충분한 접촉, 동종 간의 사회적 구조 등에 대한 의무 조항도 한층 강화했다. 예컨대 20개월령 이하의 강아지는 최소한 하루에 4시간 사람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런 조건이 한국에 적용된다면, 애초에 ‘강아지 공장’은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유럽연합의 ‘책임 있는 개·고양이 번식 지침’(Responsible Dog·Cat Breeding Guideline)은 “브리더가 번식에 사용되지 않는 개와 팔리자 않은 강아지에게 잘 돌볼 능력이 있는 양육자를 찾아주려고 노력해야 하며, 단순히 번식 능력을 잃었거나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락사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영국의 동물복지규칙 중 ‘개 번식 지침’(The Animal Welfare Regulations – Guidance notes for conditions for breeding dogs) 역시 “브리더 허가증 소지자가 더 이상 번식에 사용되지 않는 개를 직접 반려동물로 기르지 않는다면, 적절한 가정에서 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제도적인 측면이나 시민 인식 측면에서 볼 때 상업적 생산·판매 시스템 안에 놓인 동물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여건을 찾아볼 수 없다. 한 번에 몇 마리가 아닌 수백 마리를 기르는 생산업자가 번식력을 잃은 동물을 모두 반려동물로 기르는 것도, 한 마리 한 마리 살뜰하게 가정을 찾아주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보호가 필요한 동물은 넘쳐나지만 동물에게 새로운 가정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유기동물 보호소의 어리고 건강한 동물들도 입양 수요가 없어 안락사된다. 민간 동물보호단체들은 국내에서 입양 가정을 찾을 수 없는 동물들을 대상으로 막대한 비용을 써가며 해외로 입양 보내고 있다. 파양업체들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 역시 개인이 기르지 못하게 된 동물들의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개정된 동물보호법으로 개인이 사육을 포기한 동물을 지자체가 인수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사육 포기 사유를 장기입원 요양, 태풍·수해·지진 등으로 주택이 파손된 경우,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 입소하는 경우 등 극히 불가피한 상황으로 제한하고 있어서 동물을 무조건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했을 때 번식에 사용되던 동물들에게까지 보호받을 기회가 돌아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회가 책임질 수 없는 동물이라면 애초에 양산을 막아야 한다.
양평 사건에서 개를 받아와 굶겨 죽인 사람뿐 아니라 동물을 넘긴 생산업자들도 기소되었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과연 죽인 사람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지난해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조사 방법:온라인 패널조사, 설문 대행:㈜마크로밀 엠브레인)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게 된 경로로 ‘펫숍 등 동물판매업소에서 구매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24% 였다. 반면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입양했다’는 응답은 민간 보호소와 지자체 운영 보호소를 합해도 7.5%에 불과했다. 반려동물 산업 뒤에 가려진 동물들은 모른척하면서 귀엽고, 어리고, 인기 있는 품종의 강아지, 고양이만 찾는 소비자, 별생각 없이 볼거리로 소비하는 미디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라는 말이 곧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 또는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다는 근거로 쓰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시민들의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1,000만’이라는 숫자 뒤에 가려진 동물들부터 챙겨야 한다. 우리 사회의 제도와 시민인식 수준이 이 많은 동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동물을 학대한 사람만 벌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라는 명목으로 동물을 소비하는 구조 자체를 정비해야 한다. 생산업장이든 가정이든, 불필요하게 태어나는 동물은 줄이고 누구나 쉽게 기르지 못하도록 양육자 책임을 강화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에는 준비된 사람에 비해 개가 너무 많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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