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차기男'부터 성범죄자까지…위험한 '신상공개 정의구현'

정세진 기자 2023. 6. 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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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2일 발생한 이른바 ‘부산 서면 돌려차기 사건’ 당시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 화면. 피해자 측 남언호 변호사 제공. /사진=뉴스1

한 유튜버가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면서 무단으로 개인정보를 유포하는 방식의 사적 제재와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다. 흉악범죄를 저지른 이를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과 별개로 이 같은 행위는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법적 테두리 안에 있는 신상공개 제도를 더 실효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는 지난해 5월 부산에서 발생한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A씨 얼굴과 이름·나이· 직업·출생지·키와 몸무게 등이 퍼지고 있다.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탐정사무소'가 지난 2일 사건 피해자와 인터뷰한 후 A씨 신상을 공개한 게 시작이었다. 해당 채널 운영자는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고 가해자 신상을 무단 공개할 경우 저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고 보복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도 "수사기관이 하지 않고 있는 신상 공개를 피해자가 적극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튜버 카라큘라가 올린 부산 돌려차기 가해 남성의 신상 정보가 담긴 영상화면.(카라큘라 탐정사무소 유튜브 캡처)

그러면서 가해자의 체형·문신이 나온 사진, 가해자가 미성년자였을 때 특수절도·강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과 기록과 강도상해·강간 등의 전과기록도 공개했다. A씨 신상을 공개한 해당 유튜버의 영상은 조회수가 500만회에 이른다. 곧 A씨 SNS 계정이 알려졌고 A씨 인스타그램 최근 게시물에는 2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기존 살인미수 외에 성폭행 혐의를 추가 적용해 징역 35년을 구형했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는 "가해자 신상 공개에 대해 경찰서에 청원을 넣었지만 이미 재판 중인 피고인이라 권한이 없다더라"며 "검찰 쪽에서는 재판 중이라 안 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은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얼굴과 이름 나이 등 피의자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A씨 사건의 경우 경찰이 수사 단계에서 신상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고 검찰은 공개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라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신상을 공개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카라큘라의 행위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나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형법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대해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공적인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죄를 묻기 어렵다는 뜻이다.

유튜버 카라큘라가 영상에서 부산 돌려차기 가해 남성의 신상을 공개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카라큘라 탐정사무소 캡처)


최근 논란이 되는 사건의 피의자들에 대한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공개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를 처벌하는 것이 옳은지 사회적 논의는 진행 중이다.

앞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정보를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양해들, 구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한 구본창 활동가는 신상이 공개된 29명의 양육비 미지급자에 의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1심 재판부는 양육비가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 공적 사안이라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지난해 초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공적인 관심 사안은 맞지만 '양육비 채권의 중요성'과 '사인 또는 사적 단체에 의한 신상정보공개 허용여부'는 구분해야 한다"고 판단, 벌금 100만원형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이혼여부와 양육비 미지급 같은 신상공개에 따른 인격권 침해와 양육비 채권의 중요성에 대한 우열을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고유예는 비교적 경미한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 기간을 특정한 사고 없이 지나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해주는 제도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 구본창 활동가의 법률대리인인 강효원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이번 돌려차기 사건도 같은 맥락인 같다"며 "사안 자체는 공적인 관심사인 중대한 형사문제지만 그걸 떠나 수사기관이 아닌 개인이 공개한 건 인격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판부가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현재 1년에 신상공개 대상이 되는 강력사건 약 3만7000건 중 50건 미만만 공개되고 있다"며 "그나마도 언제 찍었을지 모르는 증명사진만 공개해 범행 재발을 막고 알권리를 충족한다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피의자 단계에서 공개 범위와 방식을 확대하거나 이후에 법원에서 1심 확정자를 상대로 공개하는 등 방식으로 사적 제재를 대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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