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역사상 최악 스파이” 러에 20년간 기밀 빼돌린 FBI 前간부 사망
20년 가까이 소련 및 러시아 간첩으로 활동하다가 검거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미 연방수사국(FBI) 방첩 요원 출신의 로버트 핸슨(79)이 5일(현지 시각) 감옥에서 숨졌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핵(核) 전쟁에 대비한 미국의 전략까지 러시아 측에 넘겼던 핸슨의 ‘이중 간첩’ 사건은 지금까지 미 정보 기관 역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불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이날 “전직 FBI 요원 핸슨이 콜로라도주(州) 플로렌스의 연방교도소에서 의식이 없는 채 발견됐다”며 “인명 구조 조치에도 깨어나지 않아 사망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다만 그가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아직 조사 중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1944년생인 핸슨은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으로 녹스단과대에서 화학 학사 학위를, 노스웨스턴대에서 회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회계법인에서 일하다가 1972년 시카고 경찰을 거쳐 1976년 FBI에 입사했다. 1978년 뉴욕 지부에 배속된 뒤 러시아 관련 첩보 임무를 맡게 됐다. 이후 워싱턴·뉴욕에서 구소련 정부 기관들을 상대로 첩보 수집, 방첩 업무를 담당해왔다.
핸슨은 1985년 10월 일반 우편으로 구소련 시절 국가보안위원회(KGB)에 편지를 보내 정보와 금품을 교환할 것을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자신의 신분은 ‘B’라고만 밝히고 편지 겉봉에는 ‘라몬 가르시아’라고 썼다. 그는 미국의 최신 무기 현황 및 핵전쟁 발발 시 미국의 전략, 미국의 방첩 기밀이 담긴 수천 건의 기밀을 KGB에 팔아넘겼다. KGB 후신 정보기관인 SVR에도 미국의 전자 정찰 수행 방법과 이중 간첩 운용 계획, 미 정부가 파악한 KGB 활동 분석 보고서 등 최고 기밀 문서를 전달했다. 그 대가로 금 65만달러 이상과 다이아몬드, 해외 계좌에 예치된 80만달러 등 140만달러 이상을 챙겼다.
그는 러시아에 정보를 보낼 때 ‘짐 베이커’ ‘G 로버트슨’ 등의 가명만 썼고, 구체적인 신원을 밝히지 않아 러시아는 핸슨이 체포될 때까지 그의 신원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정보 기관에서 잔뼈가 굵은 요원답게 그는 끝까지 러시아와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 워싱턴 DC 인근 공원의 비밀 장소에 기밀을 숨겨 놓은 뒤 러시아 측이 이를 추후해 회수하는 방법을 썼다.
핸슨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중 간첩으로 포섭한 미국 내 KGB 요원 3명의 명단도 러시아 측에 밀고했다. 이들 중 2명은 모스크바로 돌아간 뒤 결국 처형됐고, 나머지 1명은 장기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FBI는 핸슨을 “미 역사상 가장 해로웠던 스파이”라고 부른다고 CBS는 전했다.
그는 러시아의 비밀 요원에게 건넬 정보를 워싱턴DC 공원에 숨겨 두고 오는 길에 FBI 동료들에게 검거됐다. 당시 루이스 프리 FBI 국장,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이 일제히 이 사건을 “국가에 대한 배신”이라고 하면서 당혹해 했다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핸슨은 2001년 7월 자신에게 적용된 15건의 스파이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인정했고, 2002년 5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로 알려진 미국은 국가 안보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자들을 중형에 처한 경우가 적지 않다. 냉전시기에는 극형에 처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자폭탄 제조 기술을 소련에 넘긴 혐의로 체포돼 1951년 사형을 선고받고 1953년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감한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에설 로젠버그 부부 사건이다.
핸슨은 미국 교도소 가운데 가장 보안 등급이 높은 ADX 플로렌스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수퍼맥스’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는 중범죄자 전용 교도소인 이곳은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의 범인 조하르 차르나예프와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폭파사건을 기도한 주범 중 한 명인 람지 유세프, 멕시코의 마약왕 ‘엘 차포’ 호아킨 구스만 등이 수감돼 있다. CNN이 “이 교도소에서 탈옥한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다”고 할 정도로 보안이 삼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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