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노동자 “CCTV 12대…쉴 수가 없었다”

김미향 2023. 6. 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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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도우미’ 실태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싱가포르의 한 공원에서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AFP 사진,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화면 갈무리

“쉬는 날에도 매일 오전 5시에 기상해 하루 1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 집 안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12대나 설치돼 쉴 수 없었다. 잠자는 방에도 설치돼 고용주가 나의 모든 행동을 지켜봤다.”(사례자1)

“창문 없는 방의 2층 간이침대에서 생활했다. 침대 1층엔 고용주의 책상이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해 쉽게 화장실에 가기 어려웠다. 환기가 되지 않았고 개인 공간이 없다고 느꼈다.”(사례자2)

“휴대폰을 고용주가 관리해 전화·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했다. 고용주는 외출할 때 문을 잠그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식료품 구매나 산책도 어려웠다.”(사례자3)

지난 1일과 14일 홍콩 노동부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오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을 위한 정보 제공 창구를 공원에 마련해 제도를 홍보했다. 홍콩 노동부 누리집

저출생 고령화라는 커다란 ‘사회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이 제도를 반세기 넘게 운용해온 싱가포르 등에선 끊임없이 불거지는 인권 침해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전사회적인 노력이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견줘 고용주에게 여러 의무가 부과돼 ‘고용 부담’은 늘어나지만, 기대했던 ‘출생률 제고’ 효과는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 외국인 여성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싼값’에 육아 부담을 떠넘긴다는 발상으로 이 제도를 섣불리 도입했다간, 적잖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게 불 보듯 뻔해 보인다.

싱가포르 비정부기구 ‘인도주의적 이주경제기구’(HOME)는 지난해 6월 ‘보이지 않는 상처: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정서적 학대’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2019~2021년 이 단체 보호소에 머물렀던 필리핀 가사노동자 22명을 심층 면담해 작성된 보고서가 전하는 제도의 현실은 사뭇 충격적이다. 이들은 고용주의 24시간 감시에 시달렸고, 마음대로 외출할 수도 없었으며, 자유롭게 휴대폰을 쓸 수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인터뷰에 응한 필리핀 여성들에게 가사도우미의 삶은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던 셈이다.

싱가포르는 유럽·중국 출신의 경제적 여유가 있던 이민자들이 임금 수준이 낮은 필리핀·인도네시아 등에서 보모를 고용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1978년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정식 도입했다. 싱가포르 가정은 ‘입주 도우미’(헬퍼)란 이름으로 이들을 고용해 같은 집에서 방 한 칸을 따로 내주고 함께 산다. 2022년 6월 현재 싱가포르엔 이렇게 일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25만6300명에 이른다.

아이를 키우는 예민한 일을 맡기다 보니 싱가포르에선 집 안에 폐회로티브이(CCTV)를 설치하는 게 일반적 관행이다. 그렇다 보니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고용주의 일상적 감시, 사생활 침해, 나아가 고립·모욕·협박 등에 상시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때로는 노골적인 학대도 이어진다. 24살 미얀마 여성 피앙 응아이 돈은 2016년 7월 고용주의 폭력·학대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창문에 묶여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질 때 체중은 불과 24㎏이었다. 여론이 들끓자 싱가포르는 관련 법을 개정해 고용주의 책임성을 대폭 강화했다. 이 사건 이후 싱가포르는 유사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2021년부터 연 2회 의무로 실시하는 건강검진에서 신체적 학대 여부를 관찰하는 항목을 만들고, 근무 첫해엔 연 2회 정부 면담을 의무화했다. 담당 공무원이 임의로 가정도 방문한다. 주 1회 유급휴일에 더해 올해 1월부터는 월 1회 휴가를 의무화했다.

만약 고용주가 급여 미지급, 숙식 미제공, 부당 업무 지시 등 외국인력고용법(EFMA)을 위반하면, 고용 계약을 즉시 해제하고 고용주에게 벌금을 부과한다. 나아가 정부 누리집에 숙식 제공의 표준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한다. 이를 보면, 제공해야 하는 식단의 예시까지 나온다. 50년 동안 이 제도를 실시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해결해왔지만, 인권 침해 문제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자 제도 보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국 내의 관련 논의는 저임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정훈 의원(시대전환)이 대표발의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보면,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겐 ‘최저임금법’ 적용을 제외”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법률 개정안에 대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검토보고에도 이 법의 제안 이유를 “저임금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통해” 맞벌이 가정의 가사 부담을 덜고, 저출생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윤 대통령 역시 지난달 23일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싱가포르 시내에서 휴일에 동료들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들. 싱가포르 비정부기구 ‘인도주의적 이주경제기구’(HOME) 누리집
대만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2012년 9월16일 타이베이역에서 “인종차별 금지”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타이베이 타임즈> 갈무리
홍콩 시내 지하철역 인근 거리에서는 이주 가사노동자 여성들이 텐트를 치거나 돗자리 깔고 쉬는 풍경. 여행 유튜버 ‘노마드션’ 영상 갈무리.

전문가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가 사회에 안착하려면 고용주의 시민의식이 성숙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제도가 정말로 출생률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싱가포르의 예를 보면, 이 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11년 1.2명에서 지난해 1.05명으로 떨어지는 등 눈에 띄는 효과는 관찰되지 않는다. 싱가포르·대만의 가사노동자 문제를 연구한 린 응 유 링 캐나다 빅토리아대 박사는 지난해 12월 국제저널 <글로벌 사우스의 인권>(HRGS)에 제출한 논문에서 “어떤 법률도 시민의식 없이는 효과적일 수 없다”며 “가정 내 폐쇄된 환경은 국가도 통제할 수 없기에 제도적 차원을 넘어 고용주의 존중심과 시민의식이 있어야 제도가 실질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도서관도 지난해 12월 낸 보고서 ‘싱가포르의 저출산 대응 정책과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에서 “이 제도가 출산율 증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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