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돈은 줘도 안 받겠다고 해야 시민 단체다
윤석열 대통령이 시민 단체 국고보조금 감사 결과를 보고받고 “비리에 대한 단죄와 환수 조치를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3년간 보조금 유용·횡령 등 부정·비리가 총 1865건, 314억원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수사와 단죄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민 단체의 활동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핵심은 ‘공익’과 ‘자발’이다. ‘사익’이 아니고 ‘직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치 권력이나 기업 등의 문제를 지적하려면 정치적·재정적 독립 유지가 필수다. 당연히 활동 자금은 뜻 맞는 사람끼리 모금하거나 자체 사업을 벌여 마련해야 한다. 이는 시민 단체의 대원칙이다.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는 일절 정부와 기업 도움 없이 개인 후원금만으로 운영한다. 의료 구호 활동을 펼치는 ‘국경 없는 의사회’, 멸종 위기 동물 보호 활동을 하는 ‘세계자연기금’도 개인 회비, 기부금으로 자금 대부분을 조달한다.
그런데 우리 시민 단체는 대부분 많든 적든 정부 보조를 받는다. 지난해 2만7215단체에 국민 세금 5조4500억원이 들어갔다. 환경, 장애인, 소비자 등을 위한 공익 활동을 한다며 정부 보조를 받아 간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돌본다며 후원금을 받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윤미향 의원이 속했던 정의기억연대도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 세력, 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한다’며 1998년 이후 정부·기업의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의 보조금 감사에 대해선 “시민 단체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참여연대는 나라에서 수많은 좋은 자리를 받아 갔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연대 출신들의 잔치판처럼 됐다. 도저히 시민 단체라고 할 수 없다.
정부가 시민 단체에 국민 세금을 나눠주는 것은 공익성 때문이다. 정부가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영역을 시민 단체가 대신 챙겨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문제가 된 단체들은 공익은 내팽개치고 사익 추구에만 열중했다. 서류를 조작해 보조금을 받은 후 횡령해 사적 용도로 썼다. 보조금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유흥업소를 드나들었다. 휴대폰 사고 가족들 통신비까지 냈다. 시민운동이 아니라 생계 활동을 한 것이다.
문 정부 5년간 시민 단체 국고보조금이 연평균 4000억원씩 늘었지만 관리·감독은 소홀했다. 정권과 시민 단체가 밀착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민주당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운동권 생태계에 연간 7조원씩 퍼주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재정 건전성 높이는 법과 연계하고 있다. 세금 아끼고 싶으면 먼저 세금으로 운동권에 퍼줘야 한다는 논리다.
정권이 시민 단체에 돈을 뿌려 어용 단체로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고질이 됐다. 제대로 된 시민 단체라면 정부 돈은 줘도 받지 않는다고 해야 정상이다. 선진국처럼 보조금 대신 세금 감면 등으로 간접적 혜택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 기회에 국고보조금을 이렇게 많은 단체에 지원하는 것이 옳은지 근본적 문제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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