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만만한 게 노동자 임금인가
“원재료 가격 등 물가 상승으로 부득이 가격을 인상합니다.” 자주 가는 음식점마다 비슷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내 지갑만 생각하면 서운하다가도 임대료에 대출 이자까지 떠안을 사장님 생각을 하니 납득이 된다. 정반대의 안내문을 붙이는 상품도 있다. ‘물가 상승으로 부득이 가격을 인하합니다.’ 인간 노동력의 가격, 임금이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임금이 상승하면 자영업자가 힘들어져 고용이 줄고 물가가 상승해 조삼모사가 되니 임금을 동결 또는 인하하자고 주장한다. 이들이 최저임금을 너무 많이 올렸다고 비난한 2018년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1.5% 올랐고, 2019년에도 0.4% 오르는 데 그쳤다. 1000원 수준의 임금 인상으로는 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다.
최근 경제상황을 보면 임금이 아니라 전쟁과 기후위기, 재정 및 통화 정책 등 정치·경제 문제가 물가와 일자리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 수 있다. 노동자들과 최저임금은 책임이 없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임금이 가장 먼저 깎이는 것은 경제학의 원리가 아니라 권력의 원리다. 깎을 수 있기 때문에 깎는다. 최저임금 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4월에 발간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노동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2.7% 하락했다. 무려 10만3000원 감소한 377만3000원이다. 비교적 높은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도 임금 삭감을 당한 것이다.
노동자를 노동법 바깥으로 추방해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시흥지역 배달라이더들은 건당 임금이 무려 1300원 깎였다. 42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배달의민족도 기본 배달료를 3000원에서 2200원으로 삭감했다.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최저임금위원회도 이를 의식해 연구보고서 ‘플랫폼 노동자의 생활실태를 통해 살펴본 최저임금 적용방안’을 발간했다. 택배·가사서비스·음식배달·대리운전 등의 플랫폼 노동자들의 건당 수입을 시급으로 환산했더니 2022년 최저시급인 9160원에 한참 못 미치는 7289원을 기록했다. 업종별 차등 적용 역시 합법적 임금 삭감 방법이다. 노조가 없고 협상력이 낮아 지금도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는 편의점·미용업 등 서비스 업종의 임금을 삭감하려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탄하며 취약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개혁을 하겠다고 했는데 현실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급기야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값싼 가격으로 데려오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다른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면, 노동력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진다. 이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문제다. 헌법 32조 3항에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16년 “최저임금에 대한 시각은 그 사회의 품격이요, 노동자를 바라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품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원재료값 상승으로 부득이 가격을 인상한다고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노동력의 원가는 생계비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조사한 2022년 비혼 단신 근로자 생계비는 241만원이다. 2024년 일하는 모든 사람의 시간당 소득이 1만2000원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박정훈 배달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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