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전쟁의 참상 기억하는 ‘평화의 나무’
‘호국보훈의달’이면 떠오르는 ‘작지만 큰 나무’가 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남과 북으로 나뉜 한 민족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 학살을 벌인 참극의 현장인 대전 중촌동 ‘대전감옥터’ 한쪽에 홀로 서 있는 왕버들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그때, 이 마을의 ‘대전감옥’을 지키던 남쪽의 군인들은 감옥에 투옥했던 좌익 인사들을 죄 없는 양민과 함께 무참히 학살하고 남쪽으로 떠났다. 무려 1800명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간 ‘대전 산내골 학살사건’이다. 이어 한·미 합동작전에 따른 인천상륙이 성공하자, 대전감옥을 점령했던 북쪽 군인들은 퇴각을 서두르며 수감했던 우익 인사를 학살해 앙갚음했다.
학살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대부분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그의 후손들이 살아 있는 이 마을에서는 여전히 좌와 우의 분열 현상이 극심한 분위기다. 심지어 한국전쟁 관련 기념식조차 따로 치른다. 대전감옥은 헐어냈지만, 참극의 기억은 결코 잊히지 않았다는 증거다.
마을 사람들은 비극의 상처를 감추고 덮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생히 드러내 아픔을 나누며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참극을 드러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애써 찾아낸 건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왕버들이었다. 일제가 대전감옥을 짓고, 연못 가장자리에 풍치수로 심었던 나무 가운데 한 그루다. 참상의 흔적을 갈아엎어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짓고, 번잡한 시장이 들어섰지만, 잊히지 않는 기억을 붙들어 안고 욕처럼 살아남은 목숨이다.
사람들은 왕버들을 ‘평화의 나무’로, 그 곁의 공터를 ‘평화공원’이라고 이름지었다. 자발적으로 나무 주변을 정성껏 정비하고, 나무 앞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평화의 나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애면글면 살아남은 왕버들 한 그루는 이 땅에 굳건한 평화를 이루기 위한 안간힘의 상징이다. 온전한 ‘호국보훈’을 이루기 위해 ‘평화’의 이름을 얻은 한 그루의 왕버들을 지금 찾아가야 할 이유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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