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BIFF를 우습게 만든 사람들

강필희 기자 2023. 6.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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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부가 씌운 좌파 색깔론…정권교체 후 입신·출세 발판돼
부산문화 깨운 초심 어디 가고 견제 없는 그들만의 리그 변질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1996년 출범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최대 위기’라 규정하는 덴 이유가 있다. 과거에도 몇 차례 부침이 있었으나 그건 외풍 탓이라 변명이라도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에서부터 곪아 터졌다. 이용관 BIFF 이사장은 엄연히 간판격인 집행위원장이 있는데도 직제에 없는 운영위원장직을 별도 신설해 최측근을 임명하고, 집행위원장이 반발해 사퇴하는 과정에선 성추문 의혹마저 불거졌다. 최근 한달간 벌어진 일련의 사태 근원에는 7년 전 영화제의 완전한 민간 이양 이후 비대해진 이사장의 권한, 그로 인한 인사 전횡, 내외부 견제 부재가 깔려 있다. 올 영화제는 사상 처음으로 집행위원장 없이 대행체제로 치를 판이다. 지금 BIFF는 27년 전 문화 불모지 부산에서 기적처럼 태어나 시민이 키운 그 BIFF가 결코 아니다.

BIFF 잔혹사의 씨앗은 정부와 부산시의 어줍잖은 간섭, 그를 빌미삼아 자신들의 비위는 깔아뭉갠 영화제 인사들의 자정능력 부재라는 토양 위에 뿌려졌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BIFF가 뜬금없이 좌파 영화제로 몰리기 시작했다. 당시 영화제 창립 멤버이자 수석프로그래머였던 고 김지석은 마침 사무실을 찾은 기자에게 “BIFF가 좌파 영화제입니까”라며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 행정관료 출신인 김동호가 집행위원장이고, 여당인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소속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인 영화제를 좌파라니 기자도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뉴라이트 계열 단체와 일부 보수 원로 영화인 쪽에서 “BIFF 관계자가 반정부 시국선언을 주도했다” “영화영상기관의 부산 이전은 노사모와 BIFF 합작품이다” 등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끈질기게 제기했다. 그 여파로 김동호 위원장이 결국 물러났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2년차인 2014년 ‘다이빙벨 사태’가 또 터졌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당시 이용관 집행위원장 체제였던 영화제와 부산시가 상영 여부를 놓고 격렬하게 부딪히는 틈에 작품성을 뛰어넘는 유명세를 탔다. ‘다이빙벨 사태’는 이용관 사퇴와 영화제 민간 이양으로 봉합되긴 했지만 여진은 한동안 이어졌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일대기를 다룬 ‘문재인입니다’를 지원하고 튼다 해도 정치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상영을 막는 사람은 없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지각 있는 관객과 흐르는 시간 몫이다. 그런데도 과거 정부와 부산시는 다큐 한편으로 온국민이 호도될 것처럼 호들갑 떨면서 BIFF에 좌파라는 정치색을 입혔다. 정권이 바뀌자 이 정치색이 영화제 집행부를 감싸는 보호색이 됐다.

기업과 협찬금 중개계약을 허위로 맺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은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는 범법 행위다. 그러나 이용관 전 위원장은 영화제에서 해촉된 지 2년,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 원 확정 판결을 받은 지 불과 일주일만에 이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 때 일이다. BIFF 정관상 임기 중 회계 부정을 저지른 사람은 이사나 집행위원에서 해임된다. 그러나 그가 현직이 아니어서 이 규정은 적용되지 않고 신규 위촉은 별다른 제한이 없어 법원 판결이 결격 사유가 안 된다는 게 당시 임시총회의 해석이었다. “죄는 죄다”는 일부 영화인 목소리는 이용관의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외침에 묻혀버렸다. 그때 이용관 구명에 앞장섰던 사람이 현재의 신임 운영위원장이고, 이용관 복귀가 영화제 정상화의 상징이라던 사람이 이번에 공석이 된 집행위원장 대행을 맡은 수석프로그래머다. 이들과 보조를 맞췄던 영화단체들도 현 이사회와 집행위원회에 다수 참여하고 있다.

BIFF가 삐딱하거나 반체제적 작품을 상영했다면 그건 영화라는 장르 고유 특성이지 영화제의 성향 탓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 보수 정권과 부산시는 성급하고 편협한 자신들의 잣대를 들이댔다. 덕분에 영화제 수뇌부 몇몇은 영화 관련 기관 요직을 두루 거치는 경력을 쌓았고, 기사회생한 이용관 이사장은 실질적인 행적과 상관 없이 예술의 독립을 지킨 투사가 됐다. 보수 세력이 덧씌운 비상식적인 색깔론이 정권 교체 후 누군가의 입신 보증서가 되고 도덕적 해이에 대한 면죄부가 된 것이다.


관이 손을 뗀 BIFF는 한 해 예산 150억 원 안팎을 굴리는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이사장이 밀어붙인 운영위원장을 사실상 추인해주는 바람에 이 난리를 촉발한 이사회는 사과는커녕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혁신위원회 구성안을 들고 나왔다. 감시도 견제도 없는 조직의 민낯이란 게 이렇다. 영화제를 반석에 올리기까지 이용관 이사장의 헌신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아닌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수습후 사퇴’가 아닌 ‘사퇴가 수습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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