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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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따라 금계국이 노란 카펫을 만들었다.
하얀 찔레꽃, 연분홍색 작약도 활짝 피었다.
골목 모퉁이의 이름 모를 들꽃까지 모두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계절이다.
여러 꽃 중에서 특히 장미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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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따라 금계국이 노란 카펫을 만들었다. 하얀 찔레꽃, 연분홍색 작약도 활짝 피었다. 골목 모퉁이의 이름 모를 들꽃까지 모두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계절이다. 여러 꽃 중에서 특히 장미가 눈에 들어온다. 재잘재잘 즐거운 초등학교 등굣길을 따라서도, 어느 집 담벼락에도, 아파트를 둘러친 울타리에도 장미가 군집을 이루어 새빨갛게 피어 있다. 고운 자태로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저절로 발걸음이 멎는다.
장미는 한자로 薔(장미 장) 薇(장미 미)를 쓴다. 중국 명나라 시대에 편찬한 ‘본초강목(本草綱目)’이라는 의서에는 ‘이 식물은 줄기가 부드럽고 쓰러져서 담장에 기대어 자라기 때문에 장미(牆蘼)라고 일컫는다’고 적혀 있다. 즉, ‘쉽게 쓰러질 수 있어 담장에 기대어 피는 꽃’이란 의미다.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했지만 탐스럽고 우아한 겹꽃봉오리를 받치기엔 장미의 줄기가 너무 가늘고 약하다. 담장에 기대지 못한 장미꽃들은 이내 고개를 떨구고 땅을 바라본다. 장미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었다는 시인 릴케(Rilke)는 장미를 ‘순수한 모순’이라고 표현했다. 정열적인 꽃잎과 날카로운 가시, 크고 탐스러운 꽃봉오리와 가늘고 연약한 줄기를 떠올리면 정말 적합한 묘사이지 않은가?
사람도 서로 기댄다. 사람을 뜻하는 인(人)도 사람의 옆모습(?)을 나타낸 상형문자에서 발달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혹자는 두 사람(혹은 두 막대기)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으로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서 해석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모 가족 스승 친구 등 수많은 담에 의지했기에 ‘나’라는 꽃이 필 수 있었고, 이제는 반대로 나를 기대는 누군가에게 작은 담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의 담장에서 누군가의 꽃이 핀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의사와 간호사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의료’라는 공통 목적을 위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걸어간다. 때때로 의사들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내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 가족끼리도 서로 갈등이 생겨 다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신뢰하며 이해하려는 노력과 대화로 대부분의 갈등은 해결된다.
현재 간호법을 놓고 의사-간호사로 대립되는 양상이 안타깝다. 찬성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모두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 의료의 발전과 국민의 건강증진이다. 같은 목적을 위한 다른 시각, 다른 방법을 놓고 서로 격렬한 토론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각각 여야 정당을 등에 업은 채로 정치다툼 세력싸움으로 변절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의사협회 간호사협회의 대표들이 서로의 주장을 위해 제각각 단식을 하는 모습에는 그 타당성 판단보다 먼저 실소(失笑)가 난다. 의료계 미래 자원인 간호대 의대 학생들마저 거리에 앉아있는 모습은 의료계 기성세대를 부끄럽게 만든다.
의료의 체계는 단순하지 않다. 여러 분야의 이해득실과도 맞물려 한 부분을 바로잡으려면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기대어 유기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온전한 의료의 모습을 갖춘다. 이번 간호법 말고도 앞으로도 의료계가 부딪히고 해결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그때마다 서로의 주장을 거리 시위와 단식으로 내세울 것인가? 어느 한 편이 승리하면 반대편이 또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는 국민은 불안하다.
시급하고 당면한 의료계의 많은 문제에 대해 진정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대화와 치열한 토론을 거쳐 ‘개선된 정책’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상생의 정치로 정책을 만들고 일하는 국회가 아니라 서로를 비난해 그 반사이익을 얻는 작금의 정당정치 형태를 개탄한 어느 국회의원의 참회 섞인 호소가 새삼 떠오른다.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야 필 수 있는 장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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