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4] 참혹한 아이러니
외부와 차단된 곳에 서식하는 악(惡)이 세상을 기만하고 농락하는 플롯은 소설과 영화에서 범죄 수사물에 주로 사용된다. 그런 장르가 생겨난 건 세상에 그런 게 실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픽션은 정제되거나 확장된 논픽션일 뿐이다. 인간으로서 깊이 방황하고 작가로서 오래 써보면 확신하게 된다. 현실보다 더 지독한 픽션은 없다는 것을.
선관위에서 만장일치로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부통령 당선 사퇴가 아니라 ‘사퇴 고려’를 발표했던 이기붕이 떠올랐다. 선관위가 헌법과 법률에 무식한 건 알겠으나 뭔가 극도로 절박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기붕이 1960년 3월 17일 서대문 자택 기자들 앞에서 엉겹결에 말한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게 아니다”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줄 ‘역사적 개소리’는 언제 나올지 기대가 크다. 나 같으면 감사는 물론 수사까지 받고 말겠다. 안 그러면, 만장일치로 감옥에 들어갈까 봐 무서워한다는 오해를 사기에 딱 좋으니까.
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세워진 계기는 자유당 부정선거와 4·19혁명이었다. 자유당 패거리 같은 부패를 보호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부정 취업과 인사 부정은 시대를 초월해 역사적 사달의 시작점이 되곤 했다. 선관위는 세습 비리만이 아니라 성범죄, 절도 등 하루가 다르게 추한 본색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더러운 비닐 장판을 걷어 올리면 우글거리는 버러지 떼만이 아니라, 어디로 이어진 이상한 굴이 나올 수도 있다. 역사는 대체로 이런 ‘우연’에 의해서 ‘폭발’한다. 선관위는 한국인들이 대통령도 밥 먹듯이 감옥에 집어넣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까먹었나 보다. 이해한다. 자기들끼리만 행복하게 살다 보면 현실 감각을 상실할 수 있다. 이기붕 가족은 전원 권총 자살했다. 독립기관을 외치다가 감옥 독방에 갇힐 수는 있을지언정 대한민국에 치외법권은 없다.
선관위 일원들은 가장 깨끗하고 가장 성실하고 가장 사명감 있는 공무원이어야 한다. 법관들이 사조직에 가입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특히 그렇다. 지난 대선 때 ‘소쿠리 투표’에 경악하고도 선관위를 그냥 둔 것부터가 이 나라가 뭐에 ‘홀려 있다’는 증거다. 민주화 이후의 어느 시점에 사실상 선관위는 그 실효를 다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조직이 외딴섬에서 절대 권력을 누리니 타락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결정적 자기모순’이라는 게 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 북한 인권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 그런 예다. 선관위는 결정적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국민들이 선관위를 ‘돌이킬 수 없이’ 불신하기 때문이다. 저런 선관위를 법에 따라 심판하고 개혁하지 않는다면, 여야 국회의원들은 멍청이고 국민들은 노예이며 현 정권은 망해도 싸다. 이 참혹한 아이러니를 어찌할 것인가. 선관위가 자유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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