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청계천에 울려 퍼진 J팝

김동현 기자 2023. 6.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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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팝 가수 이마세가 지난 4월 서울 마포 홍대의 한 공연장에서 노래하고 있다./유니버설 뮤직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 청계천 앞 청계광장에는 J팝 가수 이마세의 대표곡 ‘나이트 댄서’가 울려 퍼졌다. 한국 젊은 재즈 앙상블의 연주였다. 주위를 걷던 시민 수십 명은 익숙한 멜로디에 가던 길을 멈추고 무대를 감상했다. 재즈 공연에 이어 한 사립대학 댄스 동아리가 일본어 가사가 울려 퍼지는 노래에 맞춰 무대를 장식했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J팝에 얼어붙은 땅이었다. 지상파 방송과 라디오에선 일본 음악을 트는 게 사실상 금기시됐다. 방탄소년단이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2021년 일본 유명 록밴드 백넘버와 함께 발표한 신곡은 국내에선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그렇게 한국인들에게 J팝은 1990년대 엑스재팬 등 비주얼 록밴드들의 해적판 CD로 형성된 소수 마니아층 점유물로만 여겨졌다. 사람들은 일본 문화를 즐기는 이들을 ‘오타쿠’라 일컬었고, 관리하지 않은 몸매와 헤어스타일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웠다.

아이돌을 필두로 한 ‘K컬처’가 일본 등 전 세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일이었다. 일본 최대 주간지 슈칸분슌은 2021년 “J팝이 사라진 나라 한국”이란 칼럼에서 “K팝의 급격한 성장과 반비례해 한국에선 일본 음악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올해는 한일 관계에 의미가 큰 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 외교를 12년 만에 복원시켰다. 이들은 지난달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고 공동 참배했다.

지난 수년간 한일 관계는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국내 정치권 공작과 적극적인 해결에 나서지 않는 일본 정계에 의해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한 와중에도 유일하게 양국 간 소통의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 K컬처에 대한 일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출생)의 관심이었다.

한국이 노 재팬 운동으로 시끄러웠던 2019년에도 일본 주요 도심에는 방탄소년단 등 K팝 노래들이 울려 퍼졌다. 일본 Z세대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도한(渡韓) 놀이’를 즐기며 한국 여행을 꿈꿨다.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안 제시 등 관계 개선에 나선 윤 대통령의 노력에 호응한 데에도 한국에 대한 자국 젊은 층의 관심이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며칠 전 이마세의 음악이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청계천에 울려 퍼졌듯, 한국 시장에서 변방 신세를 면치 못했던 J팝의 위상이 뒤늦게나마 떠오르고 있다. 불과 2년 전 한국이 J컬처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슈칸분슌은 지난달 29일 “일본에 대한 한국 Z세대의 속마음이 점차 수면 위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엔터테인먼트의 힘”이라고 전했다.

과거에 빚지지 않은 세대, 양국의 Z세대가 한일 관계의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K팝과 J팝은 그렇게 긍정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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