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31] 불확실한 위험과 음모론의 탄생
위험 전문가들은 위험(risk)과 위해(hazard)를 구분한다. 위해는 인명이나 재산의 피해를 유발하는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사건인 데 반해, 위험은 주어진 환경에서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위해가 실제 해가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위험은 미래의 확률, 가능성으로 측정된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는 전례가 없어서 확률을 알기 힘든 상당히 불확실한 위험에 속한다. 일본 정부는 알프스(ALPS)라는 다핵종제거설비로 오염수를 여과하면 세슘 같은 대부분의 방사능물질을 국제 기준치 이하로 걸러낼 수 있고, 이후 희석을 해서 30년 동안 조금씩 방출하기 때문에 바닷물이나 생태계의 오염은 무시해도 좋다고 주장한다. 삼중수소 같은 물질은 걸러내지 않지만, 그 농도가 미미하기에 이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과학 잡지 ‘뉴사이언티스트’와 ‘네이처’지는 관련 전문가 대부분이 알프스로 처리한 오염수 방류가 환경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문제는 시민들이 위험을 확률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지해서가 아니라, 위험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택한 위험이 아닐 때, 불확실성이 지배적일 때, 전문가의 의견이 갈릴 때, 시민은 계산된 확률보다 훨씬 더 높은 정도로 위험을 인식한다. 여기에서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정부, 언론, 과학자 단체가 안전하다고 목소리를 높일수록 시민들은 이런 얘기가 누군가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겉치레라고 생각한다. 이런 두 인식 사이의 거리가 커지면 거기에 음모론과 괴담이 비집고 들어온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출을 놓고 한국 정부는 안전하다는 이야기만을 되풀이해서 강조한다. 여당이 초청한 영국 교수는 후쿠시마 방류수를 마시겠다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가 웃음거리가 됐다. 국민은 이런 얘기가 아니라, 정부가 한국 국민의 건강과 먹거리 안전을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국제기관의 측정과 검증을 엄중하게 지켜보고, 자체 모니터링을 강화해서 혹시라도 우리나라 해양에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하나라도 기준치를 넘으면 일본에 강력하게 항의해서 오염수 방출을 중지시키겠다는 약속을 듣고 싶어 한다. 국민이 정부와 전문가를 신뢰할 때 음모론과 괴담은 발붙일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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