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총체적 난국, 길 잃은 한국경제

기자 2023. 6.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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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전 세계의 이목을 끌 정도로 한국경제는 견실히 버텼다. 그러나 팬데믹 위기를 벗어나고 작년 하반기부터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작년 경제성장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못 미치는 이례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추세는 올 1분기까지 지속돼 국제통화기금(IMF)과 OECD가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고 최근 한국은행도 1.6%에서 1.4%로 낮춰 많은 우려를 자아냈다. 성장률 전망이 낮은 것만으로 경제가 나빠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침체국면에는 엄중한 문제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보인다. 한국경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내부적·외부적 요인들의 원인이자 결과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우선, 무역수지 적자 문제다. 작년 3월부터 시작된 월별 무역수지 적자가 지난 5월까지 15개월 지속되고 있다. 수출도 8개월 연속 감소 중이다. 특히 대중국 수출의 경우 중국의 전면적 재개방 이후인데도 12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흑자만 기록하던 대중국 무역수지도 작년 5월부터 적자를 보이기 시작했다. 무역수지 악화를 개선하려면 급감한 대중국 수출을 회복하려는 정부 대책이 필요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론 미국에 떠밀려, 또 한편으론 자발적으로 한국 정부가, 미국(일본) 중심주의의 행동대장을 자처했다. 그러나 군사와 외교 그리고 반도체 산업의 한·미·일 협력 강화에 앞장서며 중국과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려는 정부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아세안국가들과의 무역도 마찬가지다. 선진국 중 무역의존도가 최상위권인 나라의 정부가 무역수지 악화와 수출 급감에도 손 놓고 구경만 하는 것 같다.

한·미·일 공조와 협력을 강화한다고 대일, 대미 수출과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협력의 파트너가 된 일본과의 무역수지는 더 나빠지고 있다. 앞으로도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오히려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일본 아베 정부의 대한국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경제전쟁으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일본 수입의존도를 낮추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며 대일 무역수지 적자폭이 크게 하락했다. 그러나 최근 다시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소부장산업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정부정책은 일본기업을 추격해야 할 국내 소부장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반한다. 정부가 일본 소부장산업과의 협력을 강조할수록 국내 소부장기업의 입지는 약해지고 경쟁력을 키울 기회는 축소될 것이라는 예상이 합리적이다. 결과적으로 소부장산업 대일 의존도를 다시 높일 것이다. 한·일 경제전쟁으로 손해를 본 것은 한국경제가 아니라 일본경제다. 일본 정부와의 갈등 때문에 한국경제가 발목 잡혔다고 말하는 것은 궤변이다. 지금 정부가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일본과의 전방위적 관계개선은 경제적으로 봐도 국익과 관련 없어 보인다.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이웃의 행패까지 무조건 덮겠다는 식의 태도는 국민이 부여한 본분과 책임을 거역하는 것이다.

정부 재정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작년 정부의 부자감세로 국세수입 감소는 어느 정도 예견됐지만 경기침체와 수출실적 부진까지 겹쳐 더 빠르게 진행됐다. 1분기 국세수입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4조원이나 감소했고 정부지출 감축에도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54조원을 기록했다. 3개월 만에 기획재정부가 올해 목표치로 설정한 규모에 가까운 적자가 난 것이다.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를 무색하게 할 지경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기조로 가면 재정지출을 크게 줄여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는 결과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저성장과 불평등의 악순환을 피하려면 위기에 취약한 경제적 약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한편 부자증세와 횡재세 도입 등 세수확충에도 노력해야 한다. 난국을 극복하려면 잘못된 정책 기조를 철회하고 전면적인 조세재정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의 근간을 해치는 검찰 공안 통치의 국가 지배구조와 그 속에서 방향을 잃은 각종 개혁이다. 그 나침반의 방향은 검찰통치가 결정한다. 노동자와 노조에 검찰의 칼이 향할 때 노조탄압, 집회결사의 자유 제한, 노란봉투법 결사반대가 노동개혁이 된다. 검찰의 칼이 지난 정부 인사와 정책을 향하면 개혁은 지난 개혁의 반동이 된다. 그래서 노동시간은 늘리고, 원전은 확대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별 관심 없는 기괴한 개혁이 탄생한다. ‘간첩 조작 사건’으로 내부징계까지 받은 검사가 대통령실 고위 공직자로 복귀하고 또 다른 증거조작 혐의가 있는 검사가 국가보훈부 장관이 되는 경천동지할 일도 보란 듯 벌어지고 이런 광란의 칼이 한국경제의 방향이 된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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