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진 칼럼] ‘비나이다 비나이다’와 ‘거짓 선동’

기자 2023. 6.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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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둘러싼 공방은 한국 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것이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1년 3월11일이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그리고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후쿠시마에서 유출될 수 있는 방사능을 비롯한 여러 위험물질에 대해 연구하고 대비하고 국제적 협력을 구해와야 했다. 말로는 성명도 내고 법안도 발의했다고 하지만 성과로 드러난 것은 실질적으로 제로라고 봐야 한다.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한다고 으름장을 놨던 문재인 정부도 슬그머니 접고 말았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그러던 중 2021년 4월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뒤늦게 정치권이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올 3월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사실 일본이 오염수 방류 발표를 2~3년 앞당겨서 문재인 정부 때 했더라면 공수만 뒤바뀌었지 싸움의 양상은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지 않았을까. 한국이 이러고 있는 사이에 일본은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다.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전 세계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문건이라면 아마도 이달 중에 발표될 국제원자력기구(IAEA) 태스크포스(TF)의 보고서일 것이다. 일본은 이 보고서가 발표되면 국제적인 검증을 통과했다고 간주하고, 올해 안에 방류를 시작할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일본은 2021년 4월 오염수 방류 계획을 발표한 직후 IAEA에 객관적인 검증을 해달라고 먼저 요청했고, IAEA와 일본 정부는 같은 해 7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년 가까이 검증을 해왔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중간보고서가 발표됐고, 6월에 발표될 보고서는 여섯번째가 될 것이다. 가장 최근 보고서는 지난달에 공개됐는데,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매우 호의적이다.

호의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첫째, 일본은 방류가 안전하고 투명하게 IAEA의 기준에 맞추어 진행될 예정이라며 그것을 검증해달라고 먼저 요청했다. 둘째, 일본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A)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적법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셋째, NRA는 향후 필요에 따라 방류와 관련된 여러 기준들을 IAEA와 협의하에 변경할 수 있다고 동의했다. 넷째, NRA는 방류 결정과 관련한 충분한 정보를 IAEA에 제공해왔다. 다섯째, NRA는 오염수에 존재하는 유해한 핵종의 존재를 모두 파악했고 특정 핵종을 제외하지 않았다. 여섯째, NRA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를 지속하고 향후 필요에 따라 개선할 것을 약속했다 등이다. 일각에서는 IAEA가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더 공신력 있는 다른 기관을 찾을 수도 없고 지난 12년간 한국 정부가 대안적인 여론을 만들어온 것도 아니어서 현실적으로 의미 없는 주장이다.

IAEA 태스크포스에는 한국이 포함돼 있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6개월 만에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가 캘리포니아 해안에 도달했음이 밝혀진 바 있는 미국이 공개적으로 찬성했고 또 다른 당사국들인 태평양제도포럼과 주요 7개국(G7)도 찬성 입장을 내놓았다. 중국과 러시아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우리처럼 강력하지는 않고, 대만은 반대 입장이지만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수입하고 있는 중이다. 잠재적 피해자인 우리가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동안 일본이 차곡차곡 국제사회를 설득해온 일이어서 이제 와서 이를 뒤집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여야 간 다툼은 점입가경이다. 그렇게 안전하면 오염수를 수입해서 대통령이 생수처럼 마시라는 주장은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5년 후에 우리 바다로 유입된다는 과학적 분석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선동일 뿐이다. 대통령이 반드시 마셔야 한다면 지난 12년간 거쳐간 네 명의 대통령이 다 같이 모여 ‘원샷’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국민 눈에는 사법 리스크에 돈봉투에 코인까지 겹쳐 활로가 없는 민주당이 이번 일을 계기로 또 한 번의 촛불이 일어나지 않을까 ‘비나이다 비나이다’ 치성드리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15년 전 광우병 촛불로 덴 적이 있는 여당은 혹시라도 또 델까 “거짓 선동”이라고 외칠 뿐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정보와 소통에는 무능하다. 위험에 대한 공포는 과학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경험을 뼈저리게 했음에도 말이다. 사태 해결의 본질과 무관한 이전투구를 하는 동안 방류를 향한 초침은 째깍째깍 흘러갈 뿐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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