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건축과 장식
20세기 서양건축 미니멀리즘 추구
美 건축가 벤투리 단순함에 반기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받아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충남 태안군 양잠리 갯벌에서 취두(鷲頭) 한 쌍이 발견되어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태안 앞바다에서는 그동안 주로 고려청자와 중국 도자기가 발견되었기에 장식기와의 일종인 취두가 발견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를 기념하고 학술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지난달 18일 한국, 중국, 일본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식기와 관련 국제학술대회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이상하다. 당시에는 전기나 엔진으로 작동하는 기계가 없어 건축공사의 모든 공정을 인력에 의존했는데 왜 구태여 기능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장식에 그토록 공을 들였을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장식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활동했던 건축가 아돌프 로스(1870∼1933)는 1908년 발표한 에세이 ‘장식과 범죄(Ornament and Crime)’에서 유용한 물건을 장식으로 꾸미는 것을 비판했다. 로스는 “문화의 진화는 유용한 물건에서 장식을 제거하면서 행진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장식적인 디테일은 타락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로스가 1910년 설계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스테이너 하우스’는 당시로는 혁명적인, 단순한 형태로 그의 건축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건축에서 장식을 배제하면 자연스럽게 건축물을 지탱하는 골조가 드러나는 단순한 모양이 된다. 1930년대 독일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으로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건축가 미스 반 데로에(1886∼1969)는 기하학적이고 기능적인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을 자신의 건축에 적용했다.그는 구조적인 질서를 가진 최소한의 골조로 구성된 건축을 추구했다.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라는 격언으로 유명한 그는 20세기 건축은 바로크나 고딕 건축과는 달리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극도의 단순성과 명확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스는 1950년 일리노이 공과대학 크라운 홀을 설계하면서 철을 이용해 내부 기둥이 필요 없는 골조를 만들고 여기에 천장을 매달고 벽에는 유리를 끼워 극도의 단순성과 명확성을 구현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면 이에 대한 반발이 있는 법이다.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1925∼2018)는 “적을수록 따분하다(Less is a bore)”라는 말로 미스가 주도한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통일적이고 명확한 것보다는 풍부하고 모호한 것을, 조화롭고 단순한 것보다는 모순적이고 중복적인 건축을 추구했다. 벤투리는 또한 중세의 거장 미켈란젤로, 핀란드계 미국 건축가 알바 알토(1898-1976) 등의 작품을 참고함으로써 모더니즘 건축의 획일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이 인정되어 그는 1991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리츠커 상을 받았다.
로스 이래 건축에서 장식을 배제한 단순함과 구조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현대 건축의 흐름은 벤투리에 의해 일단 제동이 걸렸지만, 여전히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인제 미니멀리즘은 건축과 예술뿐아니라 일상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주의(主義)가 되었다.
그러면 한국 건축의 흐름은 어떤가? 한국 건축의 주류, 아파트로 눈길을 돌려 보자. 1990년대까지 아파트는 남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직사각형이었다. 모든 가구가 햇볕 잘 드는 남향이었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성냥갑’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요즘은 남향을 대폭 포기하고 다양한 모양을 가진 아파트가 등장하고 있다. 도시적 맥락에서 다양한 모양 자체가 장식적 역할을 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보는 견지에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벤투리가 생각했듯이 약간의 장식은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주니까.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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