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의 시 읽는 마음] 공회전

2023. 6. 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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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셀카를 찍을 때, 사각 프레임 앞에 얼굴을 가져다 댄 그는 사뭇 달라진다.

시무룩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거나 볼에 바람을 잔뜩 넣거나, 웃다가도 짐짓 입을 꾹 다물거나.

하지만 역시 쉽지 않고, 때문에 셀카봉은 점점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셀카는 물론이고 사진 찍기 자체를 꺼리는, 카메라라면 피하고만 싶은 나 같은 사람 역시 다를 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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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
그는 그를 생산하려고 한다
기다란 셀카봉을 들어
하늘을 저만치 밀어내고
지금 이곳에 자기를 낳으려고 한다
 
매끄러운 표면을 만들려고 밀고 당긴다
이슬방울처럼 울고 웃고
작은 눈을 크게 뜨고
카메라 앞에서 그는 속성으로 제조된다
 
낳고 낳아도 헛헛하여 다시 셀카봉을 든다
그의 셀카봉은 점점 더 길어진다
 
그곳엔 타자가 없다
그곳엔 그가 없다
누군가 셀카를 찍을 때, 사각 프레임 앞에 얼굴을 가져다 댄 그는 사뭇 달라진다. 시무룩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거나 볼에 바람을 잔뜩 넣거나, 웃다가도 짐짓 입을 꾹 다물거나.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낳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고, 때문에 셀카봉은 점점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간신히 그럴싸한 모습을 “제조”했다 하더라도, 프레임 속에 든 것이 실은 진짜 자신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만다.

셀카엔 타자가 없지만 자기 자신도 없다는 것을. 아, 서글픈 “공회전”. 셀카는 물론이고 사진 찍기 자체를 꺼리는, 카메라라면 피하고만 싶은 나 같은 사람 역시 다를 바 없고.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대면하는 방법을. 용기를.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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