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검증 없이 ‘내 사람’ 심기…‘안일한 혁신’에 리더십 타격

김윤나영·탁지영·신주영 기자 2023. 6. 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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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지키기 운동’ 이력 등
친명 인사 내정부터 부적절
음모론 신봉 등 ‘검증 소홀’
당내 의견 수렴도 졸속으로
굳은 표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69)을 새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했다가 거둬들인 것은 그만큼 비판 여론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이 이사장이 ‘이재명 지키기 운동’을 벌인 이력이 있는 데다 ‘천안함 자폭설’ 등 각종 음모론을 신봉해왔는데도 걸러내지 못한 인사 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혁신기구 출범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던 이 대표는 오히려 리더십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이 대표는 이날 이 이사장 과거 발언을 두고 각종 논란이 불거지자 자진사퇴 형식으로 거취를 정리했다. 이 대표는 이 이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직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임하시겠다고 해서 본인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 선임을 국회에서 직접 발표한 지 9시간여 만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혁신기구의 명칭, 역할 등에 대한 것은 모두 혁신기구에 전적으로 맡기겠다”며 “우리 지도부는 혁신기구가 마련한 혁신안을 존중하고 전폭적으로 수용할 것”이라면서 이 이사장에게 힘을 실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이 대표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혁신위원장에 친이재명계 인사를 내세운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이사장은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던 2019년 ‘경기도지사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대표를 적극 옹호했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 혁신위가 ‘이 대표 체제 강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상민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혁신위가 현 지도부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모면책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이 이사장이 천안함 폭침을 ‘미국 패권 세력이 조작한 자폭 사건’이라고 주장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천안함 유가족 등이 반발했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시점이라서 이 발언 논란의 파급력은 컸다. 이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이사장의 ‘천안함 자폭 조작’ 발언을 두고 “그 점까지는 저희가 정확한 내용을 몰랐던 것 같다”며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는 공식 발표고 저는 그 발표를 신뢰한다”고 밝혔다. 과거 SNS나 언론 기고만 살펴봤어도 가능한 인사검증이 작동하지 않았던 셈이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공직 후보자 검증과는 달리 정당에서 검증할 여력이 안 되기 때문에 특별한 절차를 갖추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가 당 의견을 두루 수렴하지 않고 졸속으로 인선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발표 하루 전날인 어제 최고위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이 이사장 인선 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이 이사장 본인도 전날 밤에야 인선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김철민 민주당 의원은 SNS에 “누가 추천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혁신위원장 인선이 진행됐고, 인사 참사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혁신기구 출범을 두고 또다시 리더십에 상처를 입게 됐다. 이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투자 논란에서 ‘늑장 대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두 사건을 돌파하기 위해 만든 혁신기구 수장의 인사 참사 논란까지 더해졌다.

혁신기구는 출범 전부터 위기를 맞았다. 한 재선 의원은 “이런 식으로 혁신위원장이 물러났으니 다음 혁신위원장을 아무리 좋은 사람으로 찾더라도 감점을 받고 출발하게 된다”며 “혁신위가 중도·무당층에 대한 소구력을 높이기는커녕 당의 처지를 더 좁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당 지도부가 새 혁신위원장 인력난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

당내에선 이 대표 사퇴 요구도 다시 나오고 있다. 이상민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당 혁신의 첫걸음은 이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거취에 달렸다”며 “혁신위가 이 대표의 영향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고 온전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반신반의한다”고 말했다.

김윤나영·탁지영·신주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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