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개 실시간 ‘벗방’, 시청자 수천명…성착취 온상으로[심층기획-취약한 여성 노리는 사회 ③]

김나현 2023. 6. 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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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2시 한 영상 플랫폼에는 이른바 '벗방'(진행자가 옷을 벗는 인터넷 방송)으로 불리는 성인방송 콘텐츠가 줄을 이었다.

돈을 지불한 시청자들은 더욱 자극적인 화면을 갈구했고, 방송 진행자들은 더욱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여성 게스트를 압박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익히 아는 벗방 제작자들은 여성 BJ를 유인할 때 "(방송 영상이) 절대 유포될 일 없다"고 장담한 뒤 계약서에는 '자발적 행위', '유출 시 책임을 묻지 않는다' 등의 조항을 넣어 책임을 회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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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방송 남성 BJ, 女게스트 초대
가학적이고 선정적인 장면 연출
강제추행·폭행 등 피해 속출 불구
여성 자발적 참여 앞세워 법망 피해

지난 4일 오전 2시 한 영상 플랫폼에는 이른바 ‘벗방’(진행자가 옷을 벗는 인터넷 방송)으로 불리는 성인방송 콘텐츠가 줄을 이었다. 수십 개의 실시간 방송 시청자 규모는 모두 합해 수천 명에 달했다. 남성 진행자(BJ)의 방송은 여성 게스트를 초대해 욕설과 폭력을 동반한 가학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여성 BJ와 게스트에게는 높은 수위의 신체 노출과 성적 행위를 원하는 시청자의 요구가 빗발쳤다. 돈을 지불한 시청자들은 더욱 자극적인 화면을 갈구했고, 방송 진행자들은 더욱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여성 게스트를 압박했다. 플랫폼 댓글 창 상단에 써놓은 ‘24시간 모니터링 중’ 문구는 장식에 불과했다. 

5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 앞에서 ‘벗방 피해자 공동지원단’ 소속 혜진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활동가(왼쪽)와 호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벗방을 통해 여전히 여성을 성상품화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디지털 플랫폼 시대 새로운 성 산업으로 등장한 벗방은 지난 3월 불공정 계약과 성 착취 피해를 폭로한 여성 A씨를 계기로 그 폐해가 조명을 받았다. 여성 출연자는 공개를 전제로 한 방송 촬영 계약서를 작성하고 촬영장에 직접 나오는 등 자발적인 참여를 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피해 입증이 어려웠다. 그러나 실제 촬영에 돌입해서는 계약 내용을 한참 벗어난 강제 추행, 폭행, 영상 유출 등 피해가 속출했지만, 피해자인 여성은 ‘성적인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는 편견에 휩싸여 ‘피해자답지 않다’는 비아냥에 2차 피해를 봤다. 

5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만난 ‘벗방 피해자 공동지원단’ 활동가들은 벗방이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소속 혜진 활동가는 “벗방은 음란한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통제·성적 지배하는 것이 남성들의 놀이가 되는 ‘성차별적 구조’의 문제”라며 “여성들을 벗방 산업으로 유입시키고 피해를 확산하는 성 산업 구조와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플랫폼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일일 계약서를 쓰고 출연했다가 원치 않는 노출과 강제 추행을 당한 경우, 1인 방송 기획사에 소속돼 위약금 등을 빌미로 점점 더 높은 수위의 성적 행위를 강요받는 사례, 시청자들의 요구에 압박을 느껴 성적인 발언을 하고 자신을 갉아먹은 경우 등이 있었다”며 “이를 진짜 자발적으로 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신체를 성(性)적 자원으로 취급하는 산업에서 착취 구조는 한층 더 교묘하게 작동한다. 일단 여성을 끌어들인 뒤 빠져나오기 어렵게 이중·삼중의 덫을 놓는 과정이 그렇다. 이른바 자발적으로 방송에 참여했다는 식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수사기관, 규제기관 등의 소극적 태도 역시 벗방 산업 관계자들에 의해 역이용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최근 4년간 시정요구 조치한 개인방송 심의건수는 2019년 21건, 2020년 27건, 2021년 4건, 2022년 34건으로 해마다 30건 안팎에 그쳤다. 방심위 관계자는 “BJ가 영상 유출 피해를 입었더라도 공개를 전제로 한 방송 화면을 녹화한 것이라 비동의 촬영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익히 아는 벗방 제작자들은 여성 BJ를 유인할 때 “(방송 영상이) 절대 유포될 일 없다”고 장담한 뒤 계약서에는 ‘자발적 행위’, ‘유출 시 책임을 묻지 않는다’ 등의 조항을 넣어 책임을 회피한다. 호랑 활동가는 “계약 조항 때문에 성착취 피해를 입고도 피해자들은 ‘똥 밟았다’ 정도로 생각하고 스스로 피해자라고 ‘의미화’하길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심층기획-취약한 여성 노리는 사회]
 
①“도와줄게” 헬퍼 가장한 어둠의 손길… 온라인 ‘멘헤라 사냥’ 활개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5512879
 
②“약자의 피해는 지워지고 각색된다…피해 인지도 힘든 지경”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7500630
 
③수십개 실시간 ‘벗방’, 시청자 수천명…성착취 온상으로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5512878
 
④“벗방 시청자는 숨은 ‘주요 공모자’다” 벗방피해자공동지원단 일문일답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7523605

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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