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범죄때 면허취소는 ‘국제표준’…의료법 개정안 수혜자는 의사 자신

한겨레 2023. 6. 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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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 회원들이 지난 5월1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간호법 반대 릴레이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최정봉 | 의료윤리 비평가

2020년 미국에서 교통 문제로 인한 의사면허 취소 사례는 1250건이다. 미국 전국개업의사데이터뱅크(NPDB)를 보면, 2010~2019년 사이 매해 1000건 이상 발생했다. 음주·약물복용(40%), 난폭 운전(30%), 과속(20%)이 주요 내용이었다.

징계가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뉴질랜드도 사기, 폭행, 성추행에 이르기까지 비의료적 범죄로 인한 의사면허 취소는 비일비재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2018년 절도 유죄 판결을 받은 의사의 등록을 취소했다. 이 의사는 슈퍼마켓에서 술과 담배를 포함한 몇몇 품목을 훔쳤다고 한다. 프랑스는 2017년 가정폭력 유죄 판결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했다. 아내와 자녀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서다.

중요한 사실은 해외 각국의 이런 조치가 국가·지자체 법률로 집행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사 집단들의 자체 규제로 강제된다는 점이다. 영국은 일반의사위원회(GMC)가, 프랑스는 의사협회(CNOM)가 면허 발급·갱신, 의료진에 대한 불만 조사, 법률·윤리강령 집행과 징계 업무를 담당한다.

이처럼 세계 주요국에서 이미 수십년 동안 유지해 온 법적 근거가 우리나라는 아직 없다. 여러 방면에서 선진 의료를 자랑하면서도 의료인의 윤리적 엄격성만큼은 너무 오래 방치해 왔다. 그 결과 의료인의 범죄율 증가와 도덕적 해이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2014~2019년 5년 동안 경찰 범죄통계를 보면 변호사, 교수, 종교인, 언론인, 예술인 등 전문직 종사자 가운데 의사의 범죄가 제일 많았다. 전문직 범죄자 약 5만3천명 가운데 10%에 육박하는 5135명이 의사다. 12만 의협회원의 4.1%가 범죄 연루자라는 소리다. 변호사의 경우 변호협회 3만여 회원 가운데 약 680명이 연루했으니 2.2%로 의사의 절반에 불과하다. 성범죄만 별도로 보면, 의사의 범죄율이 변호사의 10배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사기·횡령을 저지른 의사는 881명으로 1위를 차지한 종교인(1123명)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또 2021년 경찰청 4대 범죄(살인, 강도, 절도, 폭력) 통계에서도 부끄러운 수치가 발표됐다.

불안하다.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에 대한 억제책은 미약한데 의사단체의 자기 검열과 내부규제는 부재하니 말이다. 지난 4월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의료법 개정안은 윤리적 ‘국제표준’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법안이다. 그런데 의협은 이 법안이 이중 과잉처벌이라 주장한다. “우연히 폭력에 휘말리거나 교통사고를 낸 경우에도 면허를 취소하는 건 과하다”(<중앙일보> 5월16일치)고 항의한다.

각종 범죄로 인한 의사면허 취소를 강화한 이 법안에 대해 대한의협은 2021년부터 파업 으름장으로 응수해왔다. 국회 의결 뒤에도 헌법소원 청구와 개정안의 ‘재개정’ 추진 등 초강수 대응을 예고했다. 실력 행사에 열중하는 의사집단을 보며 국민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의료인은 생명과 건강을 취급하는 특수 전문인임을 상기하자. 직업 특성상 민사상 손해배상은 물론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형사책임도 무겁다. 이런 차이점을 무시하고 변호사법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해 의료 면허취소를 강화하는 것은 의협의 주장대로 부당하게 보일 수 있다. 반면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의사집단만 특혜를 줄 수 없다고 맞선다.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의료업종은 여타 직군과의 키 맞추기나 형평성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특수업종이다. 의협 표현처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 직군에는 오히려 훨씬 더 높은 윤리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환자는 신체 건강상 재난이 정신적 위기와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는 특수 약자이고, 이들의 몸, 마음,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문 의료인은 특수 강자기 때문이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은 최고의 윤리 집단이어야 한다. 그래야 절대적 신뢰가 유지되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의탁할 수 있다. 이 신뢰를 손상할 수 있는 어떠한 행동도 강력한 사회적 감시와 견제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국회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의협이 주장하는 “의사면허 취소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법안이 아니다. 의사의 윤리적 기준 강화를 목적으로 하고, 궁극적으로는 의료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 향상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 법의 진정한 수혜자는 의사 자신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신뢰는 거저 쌓이지 않는다. 스스로 엄격하지 못하면, 법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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