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부장의 푸념

길윤형 2023. 6. 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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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주요 7개국 정상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되는 2월24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온라인으로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의장국인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회의를 주최했다. 일본 총리 관저 누리집

[편집국에서] 길윤형 | 국제부장

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일본의 광폭 외교에서 배워야 한다’ 정도의 제목으로 한시간 강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별생각 없이 ‘그러겠다’고 답한 뒤 잠시 심란한 감상에 빠졌다.

일본은 왜 광폭 외교를 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기술적인 답변을 하자면, 올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았다는 ‘사명감’이라는 키워드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1991년 말 소비에트연방 해체로 시작된 탈냉전의 시대는 ‘중국의 부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두 개의 충격으로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이런 정세 변화에 맞서 기득권 국가들은 미국 중심의 현존 질서를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주요 7개국 정상이 모여 결속을 다지는 중요 회의를 주최하게 됐으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키이우를 직접 방문(3월21일)하고, 다시 중요해진 아프리카 주요국들과 소통(4월29일~5월4일 4개국 순방)하며, 한-일 관계를 급속히 개선(5월7~8일 한국 방문)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충분한 설명일까. 그렇진 않다고 본다. 일본이 왜 광폭 외교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있겠지만,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에 대한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설명을 하자면, 진부하지만 ‘사회의 저력’이란 단어를 끌어낼 수밖에 없다.

2013년 가을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한 뒤 10년가량 매일 일본 신문을 살피며 하루를 시작한다. 2년 가까이 신문사의 국제 관련 뉴스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다 보니 자연스레 국제면에 먼저 눈이 간다. 그리고 거의 날마다 깊은 열패감에 분루를 삼킨다. 일본 신문들은 전세계에 흩어진 50여명의 특파원이 직접 현장을 취재해, 앞뒤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는 기사를 지면에 싣는다. 대개 서너명의 특파원과 네댓명의 내근 기자가 기왕 나온 외신 보도를 짜깁는 방식으로 기사를 짜내는 한국의 국제 보도와 양은 둘째치고 질의 차이가 무척 크다.

가장 경악했던 예를 들어본다. 2021년 3월, 갓 임명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투톱’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중국의 카운터파트인 양제츠 당시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을 알래스카에서 만났다. ‘상견례’를 겸해 이뤄진 이 만남은 험난한 미-중 관계를 예고하듯 거친 설전으로 시작됐다.

놀란 것은 며칠 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을 펼쳐 들었을 때다. 이 신문은 23~24일 이틀에 걸쳐 이 네 인물의 발언 ‘전문’(!)을 번역해 실었다. 지난해 6월 독일 엘마우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 때 기억도 새롭다. 폐막 다음날인 29일 아침 일찍 나와 전날 나온 28쪽 분량의 공동성명을 지면에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하다, <요미우리신문> 지면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그 짧은 시간에 7면 한 면을 통으로 할애해 성명의 주요 내용과 쟁점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만난 이 신문의 서울지국장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물으니 돌아온 답이 걸작이었다. “사람을 많이 투입해 열심히 만듭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연설, 시진핑 주석의 주요 연설 등이 있으면, 어김없이 전문을 번역해 지면에 싣는다. 이런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국이 해야 할 역할을 고민하게 되는 것을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뉴욕 타임스> 같은 세계적 권위지들의 ‘주요 콘텐츠’는 대개 국제 뉴스다. 정당·법조 중심의 한국 언론과 달리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의아했는데, 요즘 들어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국 역시 선진국이 되다 보니 우리 안에서 발생하는 일을 ‘일국적 맥락’에서 설명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당장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이후 불거진 삼성전자의 대중 반도체 수출 문제를 어쩔 것인가!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는 이미 미·중이 충돌하는 지정학적(대만)·지경학적(반도체) ‘프런트라인’(최전선)이 됐다. 정세는 앞으로 계속 험악할 것이다. 나라는 선진국인데 한국 언론은 국가의 격에 맞지 않게 여전히 너무 ‘도메스틱’(국내적)하다. 이대론 곤란하다. 한국 언론은 맹성(猛省)해야 한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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