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

한겨레 2023. 6. 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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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게티이미지뱅크

[숨&결] 손자영 | 자립준비청년

최근 자립준비청년에게 식재료를 전달하고 이들이 건강한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송이 나왔다. 몇년 전까지는 ‘보호종료아동’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는데, 어느덧 평일 저녁 황금시간대 티브이에 자립준비청년이 나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 상향 등 지원제도가 늘어났다. 17개 시도에 자립전담기관과 자립전담요원이 확충되는 등 청년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살피려는 지원도 늘고 있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진행해온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 많은 사람이 우리의 식생활까지 걱정해주는 변화가 놀랍고 무척 반갑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원 사각지대에 있는 자립준비청년들도 있다. 자란 곳이 보육원·그룹홈·위탁가정 중 어디냐에 따라 받는 지원에 차이가 난다. 보육원의 경우 시설마다 자립전담요원이 1명씩 있고, 아동 인원이 100명 초과할 경우에 1명 추가된다. 가정위탁의 경우 전체 시도별 1명이 배치되어 있고, 해당 지역에 15살 이상의 보호아동이 100명이 넘어야만 1명이 추가된다. 그룹홈은 자립전담요원 배치가 필수사항이 아니다. 게다가 위탁가정·그룹홈에서 자란 청년들은 주변에 자립한 선배들도 많지 않아 의논할 곳도 마땅치 않다. 위탁가정에서 자란 한 친구는 자신이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사실을 몰라 지원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어디서 자랄지 선택한 것도 아닌데 보호 유형에 따라 자립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중도 퇴소 청년이나 쉼터 퇴소 청년 등 홀로 자립해야 하는 점은 자립준비청년과 똑같으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청년들도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지원 대상은 ‘만 18살이 되어 퇴소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이다. 따라서 만 18살 전에 시설에서 나가는 청년들은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을 못 받는다. 쉼터 퇴소 청소년의 경우 2021년 자립지원수당이 생겼지만 퇴소일 기준 직전 3년 중 2년 이상 쉼터를 이용했으며, 쉼터를 나오기 직전 1년은 한곳에서 계속 생활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가정 폭력이나 가정 해체, 개인적인 문제 등으로 가출해 쉼터 이용을 짧은 기간 반복하는 쉼터 이용 청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시설에서 충분히 자립교육을 받고 주변에 도와줄 어른이 많은 ‘준비된 자립준비청년’만이 지원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살펴봐야 한다. 2020년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정부 지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지원을 받는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 후 1~5년 이내)은 전체 지원 대상의 50%에도 못 미친다. 이용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복잡하고 낯선 부동산 전세대출 과정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민간 재단이나 기업 지원을 받기 위해서도 자립준비청년은 자기소개서와 진로계획서 등을 유려하게 써야 하고 출신 시설 서류를 제출하는 등 행정적인 증명이 필요하다. 그렇다 보니 결국 지원받는 친구들은 정보력이 있고 거주지가 명확하며 신용에 문제가 없는, 즉 기관이 지원사업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흠 없는’ 청년들이다. 도움이 절실한 청년들은 사각지대에 계속 머문다.

“우리 함께 온전한 큰 원을 만들어볼까요?” 어린 시절 운동장에 친구들과 손을 잡고 원으로 둘러앉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렇게 앉으니 그늘이 없었고, 빈틈도 없었고,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양옆으로 잡은 손에서 서로의 온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 과정에서 자립준비청년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며 그 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더 나아가야 한다. 자립이 혼자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아닌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에게 관심이 필요하다. 더 둥근 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손을 잡아야 한다. 우리 주변 청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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