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에게 권한다'는 지역주택조합···공매·계약해지에 '도산 공포'까지

김연하 기자 2023. 6. 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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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침체에 돈줄 막혀 사업좌초 속출
대출 상환 실패에 공매 위기
사업비 압류에 계약해지 당해
시공사 법정관리 신청까지
[서울경제]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어 평소에도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까지 맞으며 좌초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장에 실패해 공매에 넘어가거나, 시공 계약 해지를 당하거나,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되는 현장까지 나타나고 있다. 평소에도 ‘원수에게 권한다’는 조롱까지 나올 정도로 문제가 계속 불거져온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부동산 침체로 난항을 겪으면서 내 집 마련에 나섰던 서민들이 목돈을 날리는 경우가 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일대에 자리한 오남3지역주택조합이 확보한 부지는 공매 위기에 처해 있다. 새마을금고 등의 대주단으로부터 200억 원 상당의 토지담보대출을 받은 이 조합은 대주단의 대출 상환 요청에 응하지 못하면서 사업 부지가 공매에 넘겨졌다.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공매 절차가 일시 중단되기는 했지만 조합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부지가 공매를 통해 처분될 경우 이미 지급한 수천만 원의 계약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 조합원들의 명의로 일으킨 수천만 원의 브리지론까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할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 지연으로 시공사 문제를 겪는 조합도 여럿이다. 지난해 반도건설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던 부산 감전동지역주택조합은 올 3월 계약 해지를 당했다. 최근 원가 인상 등으로 시공사들의 리스크 관리가 엄격해진 가운데 조합의 사업비 일부가 압류되면서 사업 진행에 차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반분양까지 진행되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울산온양발리스타 지역주택조합(울산 온양발리 신일해피트리 더루츠)도 어려움에 처했다. 올 4월 실시된 일반분양에서 대거 미분양이 발생하는 등 자금난으로 인해 시공을 맡은 하청 업체에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하면서 한때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조합은 미납금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지급하겠다며 겨우 공사를 재개했지만 최근 시공사인 신일이 법정관리까지 신청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역주택조합은 원래도 성공률이 10%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아 조합원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았는데 최근 부동산 시장까지 악화되면서 문제가 더욱 커졌다”며 “정부가 몇 차례 관련 법을 개정했지만 피해를 막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 침체 직격탄 맞은 지주택

사업 추진과정 사기범죄 부지기수

PF 냉각 등에 부실 사업장 늘어

업계 추산 성공률은 10%도 안돼

업무대행사, 수십억 날리고 잠적도

“아파트를 짓겠다며 조합원들로부터 걷은 돈이 158억 원인데 땅은 1평도 사지 않았고 광고비 등에만 수십 억 원을 지출해 고작 4억 원만 남았다고 하니 기가 찹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대전 용운동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의 한 조합원은 이같이 울분을 토로했다. 이 추진위의 업무 대행사가 올 초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연 설명회에서 사실상 조합이 파산 상태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업무 대행사에 따르면 추진위가 그간 조합원들로부터 걷은 금액은 총 158억 7020만 원이다. 이 중 50억 4650만 원이 광고비로 지출됐으며 분양 수수료와 업무 대행비, 홍보관 공사비로 각각 37억 9280만 원과 35억 1780만 원, 21억 9890만 원이 쓰였다. 토지 매수에는 1원도 쓰이지 않았지만 신탁 계정에 남은 돈은 겨우 4억 2759만 원(4월 7일 기준)이 됐다. 이 와중에 수천 만 원의 홍보관 임대료는 미납 상태다. 거액의 돈을 추가로 들이붓지 않고는 사업 추진이 불가능해진 셈이다. 업무 대행사는 이 같은 설명회를 연 뒤 잠적했고 조합원들은 업무 대행사 관계자와 추진위의 전 임원, 신탁에 대한 고소·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전용면적 84㎡ 아파트 한 채를 받는 조건으로 현재까지 약 8500만 원을 냈는데 전부 날리게 됐다”며 “자식들에게 주겠다면서 여러 채를 계약하거나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에게 추천한 분들도 있어 피해가 극심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지주택 사업은 성공률이 10%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조합 임원이나 업무 대행사 등이 조합원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냉각, 공사비 인상 이슈 등까지 겹치면서 문제를 겪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남3지주택 사업 현장인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726-1 일대 전경 사진=카카오맵 캡쳐

올 3월 사업 부지가 공매에 넘겨진 경기도 남양주 오남3지역주택조합의 조합원들도 연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 조합은 새마을금고 등 대주단으로부터 200억 원 상당의 토지담보대출을 받았는데 대주단이 일부 조합원들의 소송을 통한 압류 등으로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했다며 대출 연장을 거부하고 부지를 공매에 넘겼다. 조합이 공매 중지를 요청하는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당장의 공매 절차는 중지됐지만 수의계약 가능성도 남아 있어 조합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공매를 진행하고 있는 우리자산신탁 관계자는 “그간 8차까지 진행된 공매에서 주인을 찾지 못했고 수의계약은 지금이라도 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1차에서 420억 원이었던 최저 입찰가는 210억 원으로 낮아졌다.

부지가 매각되면 조합원들은 수천 만 원의 계약금을 날리는 것은 물론 빚까지 떠안게 된다. 지주택 사업의 경우 조합의 주선으로 조합원들이 받은 신용대출을 브리지론으로 삼는데 조합 해산 시에도 개별 조합원이 채무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개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주택의 경우 토지 확보에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최소한 두세 번의 대출 연장이 필요한데 연장이 막히거나 이자가 급등해 리스크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시공사 구하기도 쉽지 않다. 부산 감전동지역주택조합과 지난해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던 반도건설은 올 3월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최근 공사비 인상 등으로 정비사업을 보다 까다롭게 선별하는 상황에서 조합의 업무 대행사가 다른 사업장에서 갚지 않은 9억 원가량의 미수금으로 조합의 사업비가 일부 압류됐기 때문이다. 현재 사실상 사업을 위한 계좌가 모두 막혀 조합은 신규 조합원 모집 등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자금줄이 막혀 토지 매수는커녕 조합 운영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주택의 경우 업무 대행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업체들이 영세해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며 “조합원들에게 계약금 수천 만 원을 받아 일부만 토지 매입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운영비로 사용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른 현장으로 옮겨가는 식이 많다”고 지적했다.

올 4월 일반분양을 진행한 울산온양발리스타 지역주택조합(울산 온양발리 신일해피트리 더루츠)도 한숨을 내쉬고 있다. 미분양으로 인한 자금난으로 하청 업체에 공사비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한때 공사가 중단되는 문제를 봉합해 안심한 것도 잠시 이번에는 시공사인 신일이 법정관리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울주군청 관계자는 “현재 회생법원에서 법정관리 심사를 하고 있어 회생 여부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며 “도급 업체들은 사업장을 떠난 상황으로 사건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어 계속 동향을 파악하고 현장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지 확보 어렵고 추가분담금만 수억···허술한 규제에 조합비 감사도 안받아

사업계획안 마련후 토지 매입 시작

땅값 급등에 알박기세력 등장 일쑤

금융비용 급증으로 추가 부담도 쑥

도정법 미적용···관리부실도 문제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희박한 성공률을 두고 전문가들은 사업 구조 자체가 현실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주택 사업은 사업계획안을 마련한 뒤 토지 확보에 착수하는데 이 과정이 토지 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토지를 100%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토지 소유주들이 사업을 진행하는 보통의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지주택 사업은 일단 사업을 진행할 부지를 정한 뒤 해당 지역의 토지를 매수해 주택을 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작업은 통상 추진위원회로 불리는 임의 단체와 이들이 지정한 업무 대행사가 담당하는데 해당 지역의 토지 소유주로부터 토지 사용권원을 50% 이상 확보하면 추진위의 조합원 모집 신고 및 공개 모집이 가능하다. 이후 토지 사용권 80%, 토지 소유권 15%를 확보하면 조합 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다. 지구단위계획 결정이 필요한 사업인 경우 토지를 95%만 확보하더라도 남은 5% 토지에 대한 매도 청구를 통해 강제 매도를 이끌어 낼 수 있어 대개 토지 95%를 확보했을 경우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문제는 토지를 100%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대개 추진위는 주택 사업 추진 과정에서 종상향 등을 통해 토지의 가치를 높여주겠다며 토지 사용권원을 확보한다. 하지만 이 시점부터 이미 토지의 가격이 오르면서 사업성이 급락하는 것은 물론 토지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여기에 토지 가격을 최대한 비싸게 받으려는 일명 ‘알박기’ 세력까지 등장하면 사업 진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한 관계자는 “지주택 사업에는 일명 ‘6% 비대위’라는 말이 있는데 토지 소유주의 6%만 뭉쳐 알박기를 하면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 나온 단어”라고 말했다.

토지를 확보한다고 해도 성공적인 사업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냉각으로 금융 비용이 급증한 데다 공사비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통상 지주택은 일반 분양 대비 저렴한 분양가를 내세우는데 지금처럼 금융 비용과 공사비가 오르면 조합원은 처음 계약했던 금액보다 수천 만~수억 원을 더 부담할 수밖에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서울 등에 아파트를 지을 만한 나대지가 많았고 토지 가격도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그나마 지주택 사업이 성공할 확률이 있었지만 지금은 토지 확보는 물론 공사비 인상, 높아진 PF 허들 등으로 사실상 사업 성공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 같은 난관을 뚫고 준공에 성공하더라도 수억 원의 추가 분담금을 내고 다른 정비 사업보다 더 비싸게 입주하는 것이 지주택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부재한 감시 장치와 허술한 규제를 문제로 지적한다. 도시정비사업의 경우 도정법에 의해 정기적으로 회계 감사를 받고 공개 입찰을 통해 협력 업체를 선정한다. 그러나 지주택은 법적으로 조합원 모집에 대한 규제만 있을 뿐 실제로 조합비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깜깜이다. 한 분양 대행사의 관계자는 “마음만 먹으면 조합원들의 돈을 털어먹기 좋은 것이 지주택”이라며 “이 때문에 지주택만 전문으로 하는 곳도 많다”고 전했다. 업무 대행사가 사업 전반을 좌지우지하지만 업무 대행사의 자격 요건이 ‘5억 원 이상의 자본금(법인인 경우)’ 등으로 낮은 것도 문제다.

"지주택 피해 막자" 실태조사 나선 지자체

서울시, 관련 전문가로 TF 구성

성남시도 점검반 편성 감독 강화

정부는 지자체에 자료제출 요청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으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각 지자체에 지주택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으며 서울시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5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변호사 등 지주택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TF를 구성하고 서울 시내 지주택에 대한 실태 조사에 나섰다. 현재 서울 시내 지주택은 117곳인데 시는 이 중 7곳에 대한 표본실태조사를 완료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주택 관련 표준 매뉴얼을 마련해 각 구청에 제공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실태조사를 통해 파악한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해 국토부에 주택법 개정안을 건의하며, 지주택 사업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공공지원 및 행정조치 강화 방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성남시도 지주택 사업장 점검반을 편성하고 연 2회 점검을 시행하며 지주택에 대한 지자체의 관리·감독 권한 강화와 조합원의 조합 해산 총회 소집 권한 부여, 조합원 명부 공개 등과 같은 내용의 법령 개정을 건의할 예정이다. 이밖에 국토부도 최근 각 지자체에 지주택 사업 관련 민원 현황 등의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국토부는 조합원의 분담금과 사업 완료 후 정산금, 민원 현황 등의 자료를 요청했는데 이를 통해 지주택의 문제점 분석에 나설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이 같은 움직임을 반기면서도 관련 법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김은유 법무법인강산 변호사는 “2017년 6월 3일부터는 지주택 추진위가 지자체에 모집 신고를 한 뒤에만 조합원을 모집할 수 있도록 주택법이 개정됐지만 이전에 조합원 모집 공고를 한 곳은 여전히 기존 규정을 적용받아 빠져나갈 구멍이 남아 있다”며 “모든 지주택 추진위에 모집신고제도를 소급 입법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집신고제도가 마련되기 전에 모집 공고를 한 지주택 추진위원회의 경우 여전히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아 전국에 몇 개의 추진위가 있는지 정부는 물론 지자체도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토지 사용권원에 대해서도 “모집 신고 시 50% 이상의 토지 사용권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는 ‘토지의 사용권원을 확보했음을 증명하는 서류’로만 규정하고 있어 토지 소유주의 신분증 사본 등과 같이 비교적 간편한 서류로도 사용권원을 주장할 수 있다”며 “이를 인감증명서 등으로 강화하고 지주택 사업에 대한 사용승낙서라는 점을 확실하게 명시하면 사업 진행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연하 기자 yeona@sedaily.com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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