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위암 로봇 수술 대가 형우진 휴톰 창업자 | “암 수술 길잡이 역할 하는 AI, 도제식 외과 수술 문제 극복”
형우진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위장관 외과 교수는 지난 2016년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의료 부문 자회사 에티콘(Ethicon) 회장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로봇 위암 수술 세계 일인자로 통하는 형 교수는 2014년부터 J&J의 의료 기기 부문 자문을 해 왔다. 에티콘 회장이 보낸 이메일은 ‘당신의 전문성이 에티콘의 수술용 로봇 개발에 큰 도움이 됐다’는 감사 인사였다.
형 교수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형 교수는 J&J 자문을 하기 전 국책 연구기관과 의료용 로봇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외과 수술에 필요한 의료용 로봇에 대한 아이디어를 형 교수가 제시하면 엔지니어들이 구현하는 방식인데, 이 작업은 영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자문을 한 J&J에서 ‘고맙다’는 답이 왔다. 자기 아이디어가 미국 대기업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교수는 위암 수술을 앞둔 환자에 맞춰서 수술을 미리 연습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 있다면 수술이 쉬워지고, 정확해질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수술 전에 찍은 환자 CT(컴퓨터 단층촬영)를 영상의학과 의사들이 보고, 수술할 외과 의사들에게 장기 모양 등을 알려줬다.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는 그 화면과 설명을 듣고 환자 배 속을 상상하는 식이었다. 형 교수는 J&J에 감사 이메일을 받은 이듬해 자신이 수술할 때 ‘꼭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수술 보조 플랫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휴톰’을 창업했다.
휴톰이 개발하는 인공지능(AI)의 핵심은 수술받는 환자의 CT 영상을 3차원(D)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휴톰이 개발한 수술용 내비게이션(RUS)을 활용하면 개복하기 전에 수술받을 환자의 배 속 장기와 그 주변 혈관을 미리 볼 수 있다. 형 교수는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에서 3D 지도가 몇 미터 앞에서 우회전을 할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수술 지도를 알려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휴톰은 창업 3년 차인 지난 2020년 AI 분야 세계 최대 콘퍼런스인 ‘2020 컴퓨터 비전 및 패턴 인식 콘퍼런스(CVPR)’에서 영상 인식 분야 1위를 기록했다. 형 교수는 올해 초 열린 일본위암학회에서 휴톰의 플랫폼을 공개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형 교수를 최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위암 수술을 돕는 AI로봇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계기가 있었나.
“지난 2014년 미국 J&J에서 수술용 로봇 개발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미국에 있는 의사 지인을 통해서 함께 일을 해 보자는 제안이 왔다. 로봇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로서 자문을 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1년에 한두 번 미국에 가서, 그 회사가 개발한 로봇을 보고 평가하고 자문했다.
그 당시에 한국에서 국책 연구기관과 함께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원하는 결과들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미국에서 일하는 구글 엔지니어들은 내가 아이디어를 얘기하면, 순식간에 눈앞에서 만들어 버리는 거였다. 한국에 국책 기관 엔지니어들과 일할 때는 외과적 개념 설명에도 몇 날 며칠이 걸렸는데, 구글 엔지니어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만들어 냈다. 쇼킹했다. 내 아이디어를 빼앗기고 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창업을 고민했나.
“주변인들에게 이런 고민을 나눈 끝에 회사를 경영하는 지인이 ‘회사 별로 어렵지 않다’고 해서 시작했다. 물론 지금 너무나 어렵지만 그때는 그렇게 시작했다(웃음).”
기존의 로봇 수술과 휴톰이 개발한 AI로봇 수술은 무엇이 다른가.
“로봇 수술을 할 때 내시경 카메라를 배 속에 집어넣는다. 카메라로 장기를 바라보면서 수술을 하면 시야에 제약이 있다. 휴톰은 카메라를 배 속에 넣기 전에 CT를 통해서 찍은 복부 사진으로 3차원 모델을 만들어서, 마음대로 돌려볼 수 있게 했다. 카메라 화면이 아니라 배를 직접 열어서 안쪽까지 보는 식으로 수술 장면을 맞추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나.
“지금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이 내가 보는 도로 지도에 따라 ‘500m 앞에서 우회전하라’고 진행 방향을 알려준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 어떻나.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가 있는 방향에 따라 돌려봐야 한다. 배 속 사진을 돌려서 상상해 수술하지 않아도 되니 훨씬 편하고, CT를 통해 환자 정보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CT도 2차원 정보 아닌가.
“AI를 활용해 2차원 정보를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트레이닝을 많이 받은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CT를 보면, 머릿속으로 배 속 장기를 3차원으로 본다고 한다.”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설명해 주는 게 낫지 않나.
“베테랑 영상의학과 교수도 한 번에 한 개의 CT밖에 못 만들어 낸다. 그런데 AI는 동시에 다 만들어 낼 수 있다. 영상의학과 의사가 우리 팀에 있다.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구현된다고 말했다. AI의 능력에 우리 둘 다 깜짝 놀랐다.”
형 교수는 기자에게 연구실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직접 수술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그런데 형 교수가 커서를 배 왼쪽에 올리니, 화면에 노란 ‘경고’가 떴다. 그는 “수술 전날에 화면을 보면서, 환자의 배 어디에 구멍을 뚫어야 기구가 정확히 들어가는지도 확인하고 수술 계획도 짤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화면 속에서는 파란색, 붉은색 혈관들도 보였다.
실제로 수술할 때 혈관이 저 색으로 보이는 건가.
“아니다. 그냥 다 살색이다. 이 장면이 중요한 건, 사람마다 혈관의 위치, 길이 그런 것이 달라서 수술이 어렵다. 혈관의 직경은 1㎜밖에 안 된다. 비슷하게 생긴 혈관들을 착각해서 잘못 건드리면 출혈이 생기고, 환자가 사망한다. 그런데 AI가 출혈이 생기지 않게, 어떤 혈관을 클립으로 막아야 할지 알려준다.”
로봇 수술을 어떻게 시도하게 됐나.
“외과 수술은 도제식으로 배우는데, 어느 일정 수준에 오르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부분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술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나이가 들어서 수술을 잘 못하게 된다. 그러면 또 새로운 의사가 처음부터 수술을 시작하는 식이다. 그래서 처음 하는 수술이라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계속 고민했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대가의 자리를 오래 유지하려면 오히려 로봇은 배척 대상 아닌가.
“나만 잘하겠다는 인생은 실패라고 생각한다. 맛집이 있다고 생각하자. 그 식당 주인이 혼자 잘되겠다는 욕심에 레시피를 공유하지 않고 사망해버리면, 그 레시피는 사라지는 거다. 음식이야 안 먹으면 되겠지만, 우리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 아닌가.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한다. (자기 자리를 유지하려고 새로운 기술을 배척하는) 그런 행동은 매우 나쁜 짓인 것 같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