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향의 스타일노트 <34>] 루이비통은 잠수교, 구찌는 경복궁…럭셔리 브랜드 런웨이 ‘서울’
서울 한강의 잠수교가 루이비통 그리고 경복궁의 근정전이 구찌의 패션쇼 런웨이가 됐다. 루이비통이 이번 잠수교 패션쇼를 위해 초대한 글로벌 게스트만 1600여 명, 잠수교와 함께 세빛섬(가빛섬·채빛섬·솔빛섬)을 통째로 대여했는데, 한 브랜드가 축구장 면적의 1.4배에 달하는 세빛섬 전체를 빌린 건 2014년 개장 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구찌가 패션쇼를 펼친 근정전은 조선시대 왕실의 주요 의식이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행사가 진행되던 곳이다. 문화유산인 만큼 루이비통처럼 대규모로 경복궁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최초로 대한민국 역사의 심장인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펼치는 첫 번째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각각 ‘최초’란 수식어와 함께 이슈를 일으킨 이벤트들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거대한 글로벌 패션 하우스들이 경쟁적으로 서울의 랜드마크에서의 패션쇼를 그토록 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루이비통 잠수교 패션쇼, 韓 역사와 미래 공존
루이비통 최고경영자(CEO) 피에트로 베카리는 한강이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장소라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의 허브 서울에서 루이비통의 첫 프리폴(prefall) 패션쇼를 함께하게 돼 기쁘다. 한강 잠수교 위에서 선보이는 런웨이야말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끝없이 ‘다음(next)’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글로벌 도시와 브랜드의 공통 가치를 가장 아름답게 구현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구찌의 CEO 마르코 비자리는 “세계적 건축물인 경복궁을 통해 한국 문화와 이를 가꿔 온 한국 국민들과 연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며 “과거를 기념하고 미래의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이곳에서 구찌 2024 크루즈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4월 29일 잠수교 주변은 일찍부터 교통 통제에 들어갔다. 저녁 8시 시작된 행사에 배우 클로이 모레츠, 제이든 스미스, 뉴진스의 혜린 등 하우스 앰배서더를 포함한 글로벌 셀러브리티 군단이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등장하며 세계 3대 컬렉션 이상의 열기를 발산했다. 이날 패션쇼는 대대적으로 언론에 홍보됐듯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황동혁 감독이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Creative Advisor)로 쇼 콘셉트 및 시노그래피(scenography·무대 장치, 조명, 음향 등으로 극적 환경을 창조하는 작업) 디자인에 참여했다.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울려 퍼지며 ‘오징어 게임’의 배우이자 모델인 정호연이 오프닝을 열었다. 정호연은 루이비통 광고 캠페인의 모델이자 하우스 앰배서더이기도 하다. 루이비통 2023 프리폴 컬렉션은 스포티즘과 보헤미안 무드가 조화됐다. 광택 소재의 윈드브레이커, 점프슈트의 스포티한 스타들과 함께 드레이핑 디테일을 강조한 롱 드레스와 라운지 팬츠를 매치한 튜닉, 꽃 장식의 긴 스트랩 벨트 등 보헤미안 무드의 의상들이 행진했다.
피날레에는 한강을 대표하는 투어리스트 어트랙션(tourist attraction·관광객을 끄는 요소)이 된 반포대교 분수 쇼가 펼쳐졌다. 또한 이날 패션쇼의 메인 세트였던 터널 조형물 사이로 등장한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는 모델들의 피날레 행진에 이어 긴 런웨이를 끝까지 걸으며 환호 속에서 게스트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韓 대표 문화유산 경복궁의 구찌 패션쇼
5월 16일에 진행된 구찌 2024 크루즈 컬렉션이 열리는 경복궁 근정전 입구도 루이비통 못지않게 글로벌 셀러브리티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구찌 글로벌 앰배서더 이정재, 신민아, 아이유, 뉴진스 하니를 비롯해 수많은 국내 스타뿐 아니라 다코타 존슨, 엘리자베스 올슨과 같은 해외 유명 셀러브리티들이 끊임없는 카메라 플래시와 미디어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근정전을 따라 행진하는 모델 중에는 슈퍼 모델 카렌 엘슨도 있었고, 근정전 바닥을 울리는 북소리와 컬렉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국내 아티스트 람한(Ram Han)의 바이오모픽 모티브가 인상적인 동서양의 조화를 이뤄냈다. 컬렉션 의상에도 한국적인 요소가 눈에 띄었다. 한복 특유의 선이 강조된 에이(A) 라인 드레스, 한복 고름처럼 보이는 실크 밴드 디테일과 함께 한강의 윈드 서퍼와 제트 스키어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웨트 슈트(wet suit)가 등장하며 서울의 전통과 일상이 섞인 컬렉션이 펼쳐졌다. 또한 구찌 하우스의 헤리티지인 90년대 후반 구찌만의 관능적인 실루엣이 새로운 컬러 팔레트로 재해석되어 2024 크루즈 컬렉션에 올려졌다. 전통과 이를 늘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미래가 모두 공존하는 패션쇼였다.
구찌의 경복궁 패션쇼는 여러 고비를 넘겨야 했다. 원래 지난해 11월에 쇼가 예정돼 있었지만, 보그 코리아가 청와대에서 진행한 한복 콘셉트 화보가 왜색 논란을 일으켜 경복궁 패션쇼 자체가 무산될 뻔했다. 구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다시 11월에 쇼를 진행하게 됐지만, 이태원 참사가 발생해 결국 행사가 연기됐다. 그럼에도 구찌가 경복궁 패션쇼에 끝까지 심혈을 기울인 건 경복궁이 지니는 상징성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글로벌 럭셔리 마켓에서 영향력이 급부상하고 있는 만큼 서울의 대표 문화유산인 경복궁이 지니는 역사와 문화적 상징성이 루이비통과 차별화되는 강점이라 여긴 것이다. 구찌는 문화재청과 협의를 통해 향후 3년간 경복궁의 보존 관리 및 활용을 위한 후원을 약속했다.
한국 관광 홍보 활동 계획
루이비통 역시 서울특별시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한강의 자연성 회복 및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단기적·장기적 활동을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이외에도 ‘루이비통 시티 가이드(City Guide)’ 컬렉션 서울 편에 한강 관련 콘텐츠를 새롭게 담아내고, 차 없는 잠수교 ‘뚜벅뚜벅 축제’에 서울 시민과 함께하는 북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계획 중이다. 한국관광공사와는 서울의 모습을 담은 ‘루이비통 패션 아이(Fashion Eye)’ 컬렉션 사진전부터 서울을 전 세계에 알리는 콘텐츠 개발 등 한국 관광 홍보 및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협업하며 한국을 알리는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전개할 예정이다. 김의승 서울특별시 행정1부시장은 “이번 협약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서울의 대표 관광자원인 ‘한강’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한국관광공사, 루이비통코리아의 노하우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2023년을 해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를 여는 서울관광 재도약의 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2022년 디올이 이화여대와 파트너십을 맺고 패션쇼를 펼쳐 화제를 일으킨 후, 글로벌 패션 하우스의 한국을 통한 글로벌 마케팅은 이전에 상상도 못 했던 잠수교와 경복궁 패션쇼까지 확장됐다. 각 주요 패션 도시의 랜드마크에서 패션쇼를 열어 브랜드 파워를 자랑했던 루이비통과 구찌 같은 거대 글로벌 패션 하우스들이 앞다투어 세계 패션과 문화 콘텐츠의 에픽센터(epicenter)가 된 한국을 톱 리스트에 올리고 있다. 모든 일엔 명암이 있는 법이어서, 루이비통의 잠수교 패션쇼와 구찌의 경복궁 패션쇼 역시 다양한 측면에서 숙제를 남기기도 했다. 한국을 향한 이 신드롬에 가까운 스포트라이트들이 한때의 영광으로 지나지 않고 더 빛나는 영화가 되기 위한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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