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훈의 산인만필(散人漫筆) <26>]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으리라’던 언약

홍광훈 2023. 6. 5. 18: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젊은 부부의 비극을 장편서사시로 묘사한 ‘공작동남비’의 TV 연속극 포스터. 사진 바이두

후한 때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악부(樂府)민가 중에 속칭 ‘백두음(白頭吟)’이란 16구절의 오언시가 있다. 딴 뜻을 품은 남편에게 아내가 결연한 의지를 전하는 내용이다. “(내 마음은) 산 위의 눈같이 희고 구름 사이의 달처럼 밝은데, 그대가 두 마음을 갖고 있다하여 결별하러 왔소(皚如山上雪, 皎若雲間月. 聞君有兩意, 故來相決絕)”로 시작된다. 이어서 “오늘 한 잔 술로 작별을 고하고, 내일 아침 각자의 길을 가자”고 요구한다. 그리고 당초에는 “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 흰머리가 되어도 떨어지지 않기를 바랐다(願得一心人, 白頭不相離)”면서 남편이 의리를 저버렸음을 원망하는 말로 마무리된다.

홍광훈문화평론가, 국립대만대학 중문학 박사, 전 서울신문 기자, 전 서울여대 교수

이를 전한 중기의 탁문군(卓文君)이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탁문군은 무제 때의 저명한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아내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이와 같이 성숙한 오언시가 나올 수 있는 때가 아니므로 별로 신빙성이 없다. 이 시는 남북조시대 말기 남조의 진(陳)나라 때 서릉(徐陵)이 편집한 ‘옥대신영(玉臺新詠)’에 실려서 전한다.

이 시가집에는 또 ‘상산채미무’라는 고시가 실려 있다. “산에 올라 천궁 잎을 따고 산을 내려오다 옛 남편을 만났다(上山採蘼蕪, 下山逢故夫)”는 상황 설정이다. 그녀는 그에게 새 여인은 어떠냐고 물었다. 옛 남편은 새 사람이 좋기는 해도 옛 아내보다 못하다고 대답한다. 용모는 비슷하지만 베 짜는 솜씨가 달라 새 사람에 비해 옛 아내가 훨씬 낫다고 때늦은 아쉬움을 드러낸다.

이처럼 옛 시가에도 일생을 함께하지 못한 부부의 애타는 곡절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중 가장 처절한 것은 역시 ‘옥대신영’에 실려 있는 ‘공작동남비’다. 한 젊은 부부의 애달픈 사연을 오언의 357구로 서술한 장편서사시다. 원제는 ‘초중경의 아내를 위해 지은 고시(古詩爲焦仲卿妻作)’이지만, 맨 앞에 “공작이 동남쪽으로 날아가다가, 오리에 한 번씩 맴돈다(孔雀東南飛, 五里一徘徊)”는 말이 있어 흔히 그 첫 구절로 통칭된다.

후한 말기 지방의 한 작은 관리인 초중경은 유란지(劉蘭芝)를 아내로 맞아들여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3년도 못 가서 아내는 시어머니의 미움을 받아 쫓겨날 처지가 됐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애원한다. “소자는 박복한 상인데도, 다행히 이 아내를 얻었습니다. 머리 묶고 잠자리를 함께했으니, 황천에 가서도 함께 벗이 될 것입니다(兒已薄祿相, 幸復得此婦. 結髮同枕席, 黃泉共爲友).” 아내를 감싸는 모습에 화가 난 어머니가 호되게 꾸짖는다. “이 며느리는 예절이 없고 행동거지가 제멋대로이다. 내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분을 품고 있었으니, 네가 어찌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이어서 이웃에 좋은 신붓감이 있으니 빨리 못된 며느리를 내보내고 새 아내를 맞아들이라고 채근한다.

완강한 시어머니의 뜻을 이기지 못해 며느리는 친정으로 쫓겨 간다. 떠나는 아내에게 남편은 “잠시 떨어져 있다가 나중에 반드시 데리러 갈 것”이라고 약속한다. 유란지가 친정으로 돌아온 직후에 인근의 행세하는 집안에서 청혼해 왔다. 부모와 오빠가 재혼을 강요하자 유란지는 굳세게 거부한다. 혼담 소식을 전해 들은 초중경이 말을 타고 아내를 찾아와 말한다. “그대는 날로 귀하게 되겠지만, 나는 홀로 황천으로 가겠소(卿當日勝貴, 吾獨向黃泉).” 이 말에 아내가 대답한다. “함께 핍박당하는 처지는, 낭군도 그렇고 저 또한 같다오. 황천 밑에서 만날 터이니, 오늘 말을 어기지 말아요.” 두 사람은 다시 애끓는 마음으로 헤어졌다. 가족의 계속되는 핍박을 견디지 못한 유란지는 마침내 연못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와 말이 슬피 우는 어느 날 해가 진 뒤의 인적이 드물 무렵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남편도 “뜰의 나무 밑에서 서성거리다가 동남쪽 가지에 목을 매어(徘徊庭樹下, 自掛東南枝)” 아내의 뒤를 따랐다. 양가는 뒤늦게 후회하며 부부의 시신을 합장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남녀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을 때 헤어질 것을 염두에 두는 일은 없다. 당연히 늙어 죽을 때까지 함께 잘 살아가리라고 다짐한다. 우리 식으로는 ‘백년해로(百年偕老)’, 중국말로는 ‘백두해로(白頭偕老)’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바뀌거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과 변고가 생길 수 있다. ‘해로’라는 말이 처음 보이는 ‘시경’의 작품들에는 그러한 여러 예가 생동감 있게 잘 묘사돼 있다.

‘군자해로(君子偕老)’라는 작품은 해로하기로 언약한 아내가 남편을 배신하고 정숙하지 못한 행동을 저지른다고 풍자하고 있다. 시인은 지체 높은 집안의 부인이 몸치장을 화려하게 하고 움직임이 엄숙하여 겉으로는 의젓하게 보이지만, “그대가 하는 짓이 맑지 못하니 이를 어찌할거나(子之不淑, 云如之何)”라고 꾸짖는다.

‘격고(擊鼓)’ 편은 북소리가 요란한 전쟁터에서 한 장병이 아내를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그는 앞날을 예측하지 못할 절박한 상황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고 살고 모이고 흩어지고를 떠나, 내 그대에게 말했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어가자고(死生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 그러나 헤어진 지 너무 오래고 생사를 가늠할 수 없어 그 언약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탄에 잠긴다.

‘맹(氓)’이라는 시에서는 변심한 남편에게 버림받은 한 여인이 자신의 처지를 애통해하며 남편을 원망하고 있다. “내가 그대에게 시집온 뒤, 여러 해를 가난하게 살아왔다(自我徂爾, 三歲食貧)”는 여인의 한 맺힌 하소연이 이어진다. “아내는 흐트러짐이 없는데, 남편이 그 행동을 바꾸었다. 남편의 변심은 끝이 없어, 두 번 세 번 마음이 달라졌다(女也不爽, 士貳其行. 士也罔極, 二三其德).” 또한 자신은 지난 여러 해 동안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자며(夙興夜寐)’ 집안일을 열심히 해왔는데, 남편의 행동이 거칠어지고 형제들도 이를 몰라주며 비웃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래서 “조용히 지난 일을 생각하며 홀로 슬퍼한다(靜言思之, 躬自悼矣)”는 사연이다. 여섯 장으로 된 작품의 마지막에서 “그대와 함께 늙어 가리라던 다짐은 나를 원망하게 한다(及爾偕老, 老使我怨)”는 여인은 “젊을 때 웃고 떠들며 하던 굳은 언약이 이렇게 뒤집어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미 뒤집어졌으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다.

‘백두음’과 유사한 상황의 이런 이야기가 당 중기에 나온 원진(元稹)의 전기(傳奇)소설 ‘앵앵전(鶯鶯傳)’에도 있다. 장군서(張君瑞)가 지방의 어느 절에서 최앵앵(崔鶯鶯)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앞날을 약속했으나 과거 보러 도성으로 떠난 뒤에는 마음이 바뀐다. 나중에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지만, 장군서가 미련이 남아 지나는 길에 앵앵을 찾아온다. 앵앵은 만남을 거부하고 다음의 시를 써 보낸다. “나를 버리고 이제 무슨 말을 하려오? 지난날에는 그대 스스로 나와 친해지려 했소. 다시금 옛날 뜻을 가지고, 눈앞의 사람을 사랑하시길(棄我今何道, 當時且自親. 還將舊時意, 憐取眼前人).”

고대에는 부부 사이에 마음이 변하고 상황이 바뀌어도 아내가 먼저 변심해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중에서 강태공(姜太公)과 주매신(朱買臣)의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다. 여기서 ‘엎질러진 물은 거두기 어렵다(覆水難收)’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됐다. 그러나 이 설화가 역사에는 보이지 않는다.

‘한서(漢書)’의 ‘주매신전’에는 아내의 요구로 이혼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년이 넘도록 벼슬 못한 주매신은 날마다 땔나무를 짊어지고 회계(會稽)의 장에 가서 팔았다.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는 그의 뒤를 아내도 짐을 지고 따랐다. 고된 삶에 지친 아내는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 주매신이 수년 후에는 출세할 것이니 조금만 참으라고 말렸지만 아내가 떠난다. 그 뒤 조정의 부름을 받은 주매신은 크게 출세해 그 지방 태수로 부임한다. 그 행차를 맞이하기 위해 길을 청소하던 사람 중에 옛 아내의 부부가 보였다. 주매신은 둘을 뒤의 수레에 태워 관저로 들어가 후원에 머물게 하고 좋은 음식을 대접했다. 한 달 뒤에 옛 아내가 목을 매 죽자, 주매신은 그 남편에게 돈을 주어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이 일을 두고 남송(南宋) 말과 원초(元初)의 시인 서균(徐鈞)이 역사에 대한 감회를 서술한 ‘사영집(史詠集)’에서 이렇게 비꼬았다. “긴 노래 부르며 짐 짊어지고 오랫동안 쓸쓸히 살다가, 하루아침에 높은 수레 타고 회계 태수가 되었네. 비단옷 입고 고향에 돌아가 무슨 일 이루었나 하니, 그저 옛 아내 앞에서 부귀나 자랑했을 뿐이로다(長歌負擔久棲棲, 一旦高車守會稽. 衣錦還鄉成底事, 只將富貴耀前妻).”

우리 사회는 이혼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에 혼인율은 급감하는 추세다. 결혼하더라도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은 더 심각하다.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서 그렇다니 안타깝고 가슴 아픈 현실이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