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통신] 영국 회사는 점심시간이 없다고?

2023. 6. 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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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퇴근이 가장 중요한 영국인
점심 대충 해결하고 일에 몰두
한국은 점심시간 1시간 '여유'
야근 당연시하는 문화 아쉬워

한국살이를 시작했던 2007년 초, 나는 여러 가지 엄청난 문화 충격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한국 직장 생활에서 체험한 점심문화만큼 높은 강도는 아니었다.

동료들과 함께 직원식당이나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은 한국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처럼 들리겠지만, 영국인들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게 들린다. 영국 노동법은 '하루에 6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는 방해받지 않고 20분간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영국 직장인에게는 이 20분의 휴식을 제대로 누리는 것이 사치에 가깝다. 점심시간에 사무실 밖으로 나가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조리되어 나온 음식을 동료들과 먹는다는 것은 영국인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영국 직장인들은 오후 5시 칼퇴근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5시 전에 그날 업무를 마쳐야 한다는 일종의 전 국가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 직장인 5명 중 1명은 점심을 절대 먹지 않고, 100명 중 1명만이 대체적으로 1시간의 휴식을 취한다고 답변했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은 대개 책상에 앉아 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한 손으로 샌드위치를 들고 먹는다. 이런 이유로 영국 사무실의 키보드에서는 빵 부스러기와 마른 양상추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사무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는 작은 식당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거나 푸드코트가 가득한 대형 쇼핑몰을 찾아볼 수 있지만, 영국에는 그 대신 샌드위치, 감자칩 1봉지, 탄산음료를 한데 묶어 3~4파운드의 세트 메뉴(참으로 건강한 메뉴가 아닌가?)로 판매하는 샌드위치 전문점이나 슈퍼마켓 체인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음식은 일을 하는 동안 입에 밀어 넣거나 사무실로 걸어오는 동안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들이다. 드물게는 잠깐 동안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샌드위치를 5분 안에 먹어 치우는 호사를 누리는 일도 있긴 하다.

이런 런치 세트는 고열량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허기를 막아주는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 그러나 몇 분 안에 먹어 치울 수 있는 가벼운 음식이라는 것은 식사 중에도, 그 이후에도 빠른 속도로 계속 업무를 처리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밥과 국으로 배를 잔뜩 채운 거한 한국식 점심식사의 여파는 오후 2시께 일어나는데 이때쯤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온다. 사무실을 둘러보면 책상에서 꾸벅대는 동료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이 시간대의 업무 능률은 거의 0으로 뚝 떨어진다. 한국에서는 칼퇴근이 극히 드물다. 한국의 많은 직장인들은 저녁시간을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오후에 못다 한 생산성의 균형을 맞춘다.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거창한 한국의 점심시간, 5분 안에 정크푸드를 밀어 넣어야 하는 영국의 점심시간, 과연 어떤 방식이 맞는 걸까? 양쪽 모두 경험해 본 나로서는 두 가지 모두가 문제투성이로 느껴진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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