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애송이들아" 돌아온 섹시 악녀들
1920년대 美 교도소 배경
탐욕과 배신 춤으로 풀어내
14인조 빅밴드 라이브연주
귀에 꽂히는 재즈음악 가득
텅 빈 무대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위에는 검정색 중절모 하나. 조명이 켜지고 '올 댓 재즈' 음악이 흐르면 매끈한 의상을 걸친 배우들이 희미한 불빛 아래 몸을 살랑인다. 거대한 무대장치도, 화려한 소품도 없이 관객을 무법천지 뒷골목으로 홀리는 뮤지컬 '시카고' 얘기다.
지난달 27일 뮤지컬 '시카고'가 6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공연은 긴 세월 사랑받아 온 여느 롱런 작품 가운데서도 전설 중의 전설로 불린다. 미국 역사상 최장 공연을 기록한 스테디셀러로,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전 세계 36개국 500개가 넘는 도시에서 3300만 관객을 만났다.
작품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다. 금주령이 내려지고 마피아가 뒤엉키던 시절, 악명 높은 범죄 도시에서 살인죄로 잡혀 들어온 '벨마'와 '록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줄거리를 그렸다. 공연 시작 전 안내된 공지처럼 살인과 탐욕, 부패와 간통, 배신이 가득하다.
동생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두 사람을 죽인 벨마는 쿡 카운티 교도소에서 제일 잘나가는 '스타 살인마'다. 그는 무죄 판결을 받고 전국 투어를 다닐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바람 잘 날 없는 시카고에선 어느 것 하나 영원한 것이 없는 법. 혜성같이 등장한 록시는 벨마보다 더 어리고 더 기구한 사연을 가졌다. 언론플레이를 기가 막히게 하는 속물 변호사 '플린'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할 스타를 물색하며 록시와 벨마 사이를 오간다.
작품은 초연 당시 선정성과 자극적 요소에 요동치는 언론과 민심, 형법제도의 모순, 황금만능주의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자 했다. 오늘날과 비교해도 큰 무리가 없다. 유흥과 환락에 물든 사회를 보여주는 '셀 블록 탱고', 품위를 잃어가는 세상을 한탄하는 '클래스' 등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넘버가 이어진다. 14인조 빅밴드의 라이브 공연으로 감미로움을 더한다.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플린 역을 맡은 배우 제프 브룩스는 이번 25주년 공연의 특별함을 "유산(legacy)"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오랜 시간 이어온 유산 같은 작품"이라고 애정을 나타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국내 공연 당시 화제가 됐던 플린의 복화술을 보지 못해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출과 프로덕션에 따라 해당 장면이 얼마든지 축소되거나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이 공연 측 설명이다. 실제로 이날 브룩스는 "복화술 없이도 록시를 조종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한국 관객을 위해서라면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내한 공연에만 있는 한국어 자막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17년 당시 선보였던 자막 디자인과 표현 문구를 적재적소에 맞도록 업그레이드시켰다. 대표 넘버 '올 댓 재즈' 가사가 흘러나오는 스크린에선 둥글둥글하면서 한껏 멋을 부린 서체가, 벨마가 객석에 "안녕 애송이들아"를 외치는 코믹한 장면에서는 진지한 궁서체가 등장해 웃음을 준다. 공연은 오는 8월 6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이어진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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