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디플레 수렁서 탈출"···日, 엔저에 순익 신기록·임금 93년 이후 최고

이태규 기자 2023. 6. 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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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경제 게임 체인지] <상> 부활하는 일본
4월 물가상승률 40년만에 최고
1분기 성장률도 예상치의 두배
日 "지속 가능한 회복국면 진입"
월가 "사무라이 경제 돌아왔다"
반도체 등 미래 산업 체질개선
고령화 해법·구조개혁은 과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모습. 교도연합뉴스
[서울경제]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 역동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본 경제가 최근 들썩이고 있다. 물가와 임금이 동시에 오르는 선순환 조짐으로 고질적인 디플레이션 탈출 기대감이 커지고 있고 1분기 경제성장률도 예상치의 2배에 달했다. 반도체·전기차 등 첨단산업에서 옛 영광을 찾기 위한 움직임도 분주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본의 위용이 돌아왔다”고 평가했다.

5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일본의 4월 근원 물가상승률은 4.1%(전년 대비)로 1981년 이후 40여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것으로 그만큼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크다는 의미다. 일본의 근원 물가 상승률은 장기간 1%대, 심지어는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많지만 최근 급등하며 경제에 활기가 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 월가 일각에서는 “긴 침체의 터널을 지나 사무라이 경제가 돌아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적 호조에 임금 상승률 30년 만에 최고

오랜 기간 제자리걸음을 한 근로자의 임금도 기업 이익이 증가하며 오르고 있다. 1분기 일본 기업 이익은 전년 대비 4.3% 증가하며 2분기 만에 플러스 전환했다. 도쿄증권거래소(TSE)의 우량 기업 1067개의 올 회계연도 순이익은 2%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3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임금도 꿈틀대고 있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의 2023년 춘계 노사 협상 1차 집계 결과 대기업 임금 인상률은 3.91%로 1993년 이후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쿠라 마사카즈 경단련 회장은 구조적 임금 인상과 관련, “내년 이후에도 계속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으로 연결하고 싶다”며 꾸준히 임금을 올릴 것을 시사했다. 임금과 물가가 동반 정체되며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심리가 경제 전반에 퍼져 있었는데 이를 깨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셈이다.

거시 경제 지표도 순항 중이다. 일본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연율 기준 1.6%(전 분기 대비)로 이전치(-0.1%)는 물론 예상치(0.8%)를 두 배나 웃돌았다. 일본 내각부는 최근 월간 보고서에서 ‘경제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다’고 진단, 이전의 ‘경제에 일부 약점이 있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전망을 10개월 만에 상향했다. 내각부 관계자는 “경제가 스스로 지속 가능한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움직임이 경제에 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외부 요인과 정책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식료품·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수십 년간 바닥을 기던 일본의 물가를 자극했다. 물가가 오르니 임금도 올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경제 전반에 퍼졌다. 여기에 일본은행(BOJ)의 꾸준한 돈 풀기는 엔화 약세로 이어져 기업의 이익을 늘렸고 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정부 역시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기업이 임금을 올려야 한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주가가 버블 붕괴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경제 심리에 도움이 되고 있다.

반도체·전기차 등 미래산업 방향 수정

일본은 미래 산업 육성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달 미국과 일본은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새 로드맵을 마련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미일 반도체 협력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삼성전자·TSMC·IBM·마이크론 등 외국 반도체 회사 7곳 대표들을 불러 모아 투자 확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마이크론은 향후 몇 년간 일본에 최대 5000억 엔(약 4조 7000억 원)을 투자해 히로시마 공장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하기로 했고 일본 정부는 2000억 엔(약 1조 9000억 원)의 보조금을 마이크론 측에 지원할 예정이라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그동안 전기차로의 전환이라는 글로벌 흐름을 간과하고 수소차 등에 집중해온 도요타도 전기차 생산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 건설하는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에 21억 달러(약 2조 7000억 원)를 추가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5년부터 미국 켄터키주에서 전기차 생산을 개시한다는 목표다.

다만 CNN은 “일본 경제가 여전히 거대한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인구의 약 3분의 1이 65세가 넘었고 노동력도 감소하고 있다. 경제가 잠시 꿈틀대다가도 다시 침체에 빠지는 과거 30여 년간의 ‘관성’이 이번에도 반복될 수 있다. 재팬타임스는 “일본 경제의 장기적인 호조는 경제 전반에 대한 구조 개혁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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