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건네는 ‘연대의 손길’[플랫]

플랫팀 기자 입력 2023. 6. 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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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엔 쉬이 잠에 들지 못한다. 너무 많은 생각 때문일 것이다. 앞날을 그리다 보면 그렇게 된다. 몇년 후, 혹은 몇십년 후가 두려운 건 내 삶의 필수 조건들이 나빠질 게 분명해서다. 홀로세를 지나 인류세로 접어들어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의 생태적 운명을 콧노래하며 낙관하기란 어렵다. 나에게 미래란 기후위기와 떼어놓을 수 없는 무엇이다. 그런 밤엔 나처럼 잠 못 들고 있을 것만 같은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프랑스 서점 매대에서 저널리스트 로르 누알라의 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생각했다. 뒤척이는 친구들과 나의 손에 이 책을 쥐여주고 싶다고. 서둘러 판권을 구입한 뒤 번역 출간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 만들어보는 외서였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이 <지구 걱정에 잠 못 드는 이들에게>다.

이 시대의 새 화두 ‘생태불안’

로르 누알라는 환경 전문기자로 오랫동안 일해온 작가다. 온갖 걱정스러운 생태 정보를 분석하는 게 그의 직업이라는 의미다. 기후위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태 전환을 논의하고 실천하는 움직임은 진행 중이나, 다가올 파국 때문에 발생하는 심리적 위기에 관한 고민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게 로르 누알라의 생각이다. 그는 <지구 걱정에 잠 못 드는 이들에게>를 통해 생태불안(eco-anxiete), 생태우울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환경 재난에 대한 만성적 두려움을 다루는 용어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용어지만 미국의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 사이에서는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관련 진료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환경 파괴와 빈번한 자연재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치료하고자 모인 정신과 의사들의 조직 기후정신학연합(CPA)도 10년 전부터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들은 기후위기를 두고 “공중 보건이 직면한 심각한 위협이며 정신 건강 또한 예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예측 가능한 비관적인 미래에 관해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뿐 아니라 ‘외상 전 스트레스’를 입기도 한다. 정신분석가 마리 로마넨은 말한다. 생태불안증자를 환자 취급하는 건 눈앞에 보이는 걸 보이는 대로 말하는 사람에게 본다고 나무라는 것과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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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이전 상태에 있는 건 아니다. 환경 재앙을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캘리포니아에서 화마를 피해 달아나야 했던 사람들, 호주 산불로 희생당한 수억명의 동물들, 해수면과 거의 같은 높이에 사는 섬 사람들은 지금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 장기간의 홍수나 가뭄 속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불안과 우울을 겪는다. 극심한 더위가 알코올 의존도와 자살률을 높이기도 하며, 자연 재해를 겪은 지역의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보다 우울 증세에 관해 두 배 높은 수치를 보인다.

생태와 마음을 동시에 돌보기

로르 누알라는 질문한다. 지구의 위독한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신 건강을 돌본다면 보다 나은 기후위기 대응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면 좋을까? 또한 좋아하지 않는 이들과도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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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대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후위기를 마주하면서 전혀 우울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중요한 것은 24시간 우울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어차피 겪어야 한다면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하는 편이 낫다고 말이다. 책을 옮긴 번역가 곽성혜는 “로르 누알라의 문장에서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난다”며 이렇게 말한다. “글러버린 인간 종에 대한 일종의 자학이랄까? 그의 유머는 절망의 절제된 표현이자 붕괴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인간들에 대한 연대의 손길이다. 당신이 지구 걱정에 잠 못 이루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산불과 홍수와 가뭄과 해수면 상승과 폭염과 식량난과 자원고갈과 더욱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을 생각하며 마음고생에 시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그러니 이제부터는 우리와 이웃들의 정신 건강을 잘 살피는 게 지난한 과정을 버텨내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우리를 다독인다.”

그러므로 이 책은 기후위기 시대의 마음을 돌보는 지침서 중 하나다. 피로해질까 두려워서 생태 소식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면역력을 높이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생태불안을 먼저 다뤄본 이들로부터 지혜를 공유받을 수 있을 테니. 이런 세상에서도 서로를 돌볼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고야 마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런 우리라면 덜 나쁜 기후위기 대응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나와 주변의 마음을 살피며 미래로 가고 싶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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