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쩔 수 없이 ‘수퍼맨’이 되어야 하는 경찰
“굉장히 올드(old)한 방식이죠.”
최근 윤희근 경찰청장이 마약·전세사기·건설노조 불법행위·불법집회 수사를 독려하기 위해 이례적인 특별승진(특진) 확대를 내건 것을 두고 경찰 ‘넘버2′ 계급인 치안정감까지 올랐던 경찰대 출신 인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옛날에나 통했던 방식”이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계급정년이 있어 제 기간에 승진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 경찰에게 특진은 당근일 수 있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이 인력 부족에 따른 업무 과중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진시켜 줄 테니 더 열심히 수사하라’고 하는 것은 당근으로 채찍질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경찰이 만성적 인력 부족을 겪는 상황이 된 데에는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공약 탓이 크다. 경찰은 불법집회에 엄중대처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의무경찰(의경)을 없애면서 집회·시위 대응 인력이 대폭 줄었고, 경찰의 공권력은 필연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불법행위를 단속할 힘을 잃어버린 경찰은 대신 ‘설득’을 통해 불법집회를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집회 참여자들과 시민, 경찰 간 소통 중재자 역할을 하는 ‘대화경찰’을 내세워 집회·시위 주최자들을 잘 설득하고, 이를 통해 집회가 합법적으로 진행되게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 당시 도입된 대화경찰은 우리나라 집회 문화가 성숙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경찰 인력 감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했던 선택지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포함한 불법집회 참가자 대다수가 경찰을 무시하기 일쑤여서 대화경찰을 도입한 취지 자체가 퇴색돼 버렸다.
국가정보원이 가진 대공수사권을 경찰에게 몰아준 것 역시 경찰에겐 부담으로 작용했다. 내년부터 당장 국가보안법 위반과 내란·외환죄 등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일원화되는데, 이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 인력은 2020년 421명에서 작년 461명으로 약 10% 증가한 수준에 그쳤다. 그런 상황에서 국정원이 담당했던 업무를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경찰이 맡아야 하니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당연하게도 수십년 동안 수사 노하우를 축적한 국정원을 경찰로 대체할 수 있겠냐는 불신이 불거지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가지면서 업무량이 대폭 늘어나 사건 처리 기간이 길어졌고, 이에 따라 소액사기 등 민생침해범죄에 대한 대응력도 떨어졌다는 지적은 이제 입이 아플 정도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분리했지만 일선에선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며 혼란스러워 한다.
경찰은 수사·대공·불법집회 대응은 물론 핵심 역할인 치안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핼러윈 참사’를 계기로 경찰은 이제 모든 대규모 행사에 다수 경력을 투입해야 하고, 많은 인파가 몰린 곳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술 취한 시민이 사망하는 일이 없도록 주취자를 보호하거나 인계하는 일 역시 일선 지구대·파출소의 ‘핵심’ 업무 중 하나가 됐다. 한 일선 경찰관이 “요즘 길고양이가 죽었다는 신고가 많이 접수돼 경찰이 직접 현장에 출동하고 있다”며 진지하게 난색을 표할 정도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치안과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을 경찰 혼자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만성적 인력 부족을 해결할 방법은 당연히 인력을 증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부문 개혁 차원에서 사실상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는 윤석열 정부 기조를 고려하면 대대적 인력 증원은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4월 수사인력 증원 계획에 대해 “인력을 무조건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실무자급 경찰관들도 “아무리 인력을 달라고 해도 안 준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냐”고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니 이제 경찰관은 수퍼맨이 되어야 한다. 수사는 당연히 잘해야 하고, 범죄자를 신속하게 체포하는 것은 물론 신변보호자가 스마트 워치로 호출할 경우 몇 분 내에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 술에 취한 시민을 안전히 귀가시켜야 하고, 길고양이가 학대로 죽은 것은 아닌지도 조사해야 한다. 경찰이 수퍼맨이 되지 못하면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이 짊어져야 하는 현실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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