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석유 패권국’ 지위 흔들리나…OPEC+ 일괄적 추가 감산 요구 거부
앙골라 등에 동참 요구했지만 거부당해
빈살만 ‘비전 2030’ 프로젝트 딜레마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음 달부터 하루 100만배럴씩 원유 생산을 줄이겠다고 4일(현지시간) 밝혔다. 지난 4월에 이어 두 달 만에 나온 추가 감산 조처다.
하지만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의 일괄적인 원유 추가 감산을 원했던 사우디 계획은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전 세계 대체 에너지 개발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추진하는 산업 개편과 맞물리며 사우디의 ‘석유 패권국’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정례 장관급 회의에서 사우디는 7월부터 하루 원유 생산량을 기존 1000만배럴에서 900만배럴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지난 4월에도 자발적으로 하루 50만배럴 감산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다른 OPEC+ 회원국들도 애초 올해 말까지였던 감축 기간을 내년 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로써 OPCE+가 내년 1월부터 12월까지 생산하는 원유량은 4046만3000배럴 수준으로 결정됐다. OPEC+는 사우디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14개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 10개국으로 구성돼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사우디가 원했던 OPEC+ 24개 전체 회원국의 일괄적인 추가 감산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나이지리아와 앙골라 등 일부 아프리카 회원국이 사우디의 일방통행식 OPEC+ 운영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WSJ는 “일반적으로 OPEC+는 공식 회의에 앞서 사전에 원유 생산량을 합의한다”며 “이번엔 생산 할당량에 대한 반발로 긴장도가 높았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빈살만 왕세자의 이복동생인 압둘아지즈 빈살만 에너지부 장관은 회의 하루 전인 지난 3일 아프리카 일부 회원국 대표를 숙소로 불러 추가 감산에 동참하라고 요구했지만 이들은 불쾌감을 표하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후 쿠웨이트와 알제리 대표단이 기존 감산 기간을 연장하는 선에서 중재안을 제시해 갈등을 봉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우디가 원유 생산 결정을 다른 구성원과의 협의 없이 밀어붙이는 데 대한 불만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나이지리아와 앙골라는 코로나19 확산과 수년간의 시설 투자 부족으로 원유 판매 수익이 급락한 상황에서 사우디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사우디가 이처럼 무리한 행보를 보이는 배경엔 빈살만 왕세자의 산업 개편 프로젝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빈살만 왕세자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비전 2030’의 핵심은 석유 위주의 경제 체제 종식에 있다. 석유 외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고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사업으로 사우디의 현대화를 이끌겠다는 복안이다.
사우디로선 비전 2030을 뒷받침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원유 가격이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를 필요가 있다. 외신들은 사우디 관리들이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해 배럴당 약 81달러(약 10만6000원) 이상의 가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당국의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OPEC+ 회의에서 사우디의 입김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이 입증됐고, 강력한 우군으로 떠오른 러시아조차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서방 제재를 피하고자 상당량의 원유를 값싸게 시장에 쏟아내고 있어 사우디를 골치 아프게 하고 있다.
이날 시장은 일단 사우디 뜻대로 움직였다. 8월물 브렌트유 가격은 사우디의 감산 발표 직후 아시아 거래에서 장중 한때 전장 대비 3.4% 오른 배럴당 78.73달러를 찍었다. 다만 WSJ는 “세계 경기 회복이 더딘 만큼 장기적으론 원유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10월 사우디의 전격적인 감산 조처(하루 200만 배럴)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던 미국 정부는 표정 관리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익명의 백악관 관계자는 “우리는 배럴이 아닌 미국 내 소비자 가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유가는 지난해부터 크게 내려온 상태”라고 진단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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