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문제가 회사 문제로… 교보생명의 기막힌 전환

강서구 기자 2023. 6. 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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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교보생명 지주사 전환의 속내
신창재 회장 vs 어피니티
풋옵션 논란 5년째 이어져
주주 분쟁에 물 건너간 IPO
IPO 실패 후 지주사 전환
성장동력 발굴 위해서라지만
회장 일, 대신한다는 지적도
사측 “주주 분쟁은 회사 문제”

올해 초 교보생명이 지주회사 전환 카드를 꺼내들었다. 해결의 실마리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는 어피니티 컨소시엄과의 '풋옵션(지분매수청구권)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또다른 한편에선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어피니티 간 풋옵션 문제를 교보생명의 문제로 전환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어피니티 컨소시엄의 풋옵션 논란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풋옵션 논란 = 재무적투자자(FI)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기업이 있다. 한두해만 그런 게 아니다. 벌써 5년째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다름 아닌 교보생명이다. 교보생명은 어피니티 컨소시엄(이하 어피니티)과 풋옵션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교보생명과 어피니티가 인연을 맺은 건 2012년이다. 당시 어피니티는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보유하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 24%를 총 12조2054억원(1주당 24만5000원)에 인수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겐 백기사(우호적 주주)나 다름없었다. 지분이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면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어피니티는 한가지 조건을 달았다. 교보생명이 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으면 신 회장이 어피니티가 사들인 교보생명의 지분 24%를 되사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풋옵션(지분매수청구권)이었다. 이는 교보생명이 아닌 신 회장과 어피니티가 맺은 주주 간 거래였다.

하지만 IPO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어피니티는 2018년 풋옵션을 행사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어피니티는 주당 40만9912원에 풋옵션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격은 어피니티가 회계법인 딜로이트 안진에 요청해 산출한 공정시장가격(FMV)이었다. 이를 근거로 계산하면 신 회장의 풋옵션 매수 가격은 2조167억원에 달한다. 신 회장은 천문학적인 자금이 드는 풋옵션 행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애매한 중재 결과 = 풋옵션 논란은 끝내 '법정 공방'으로 옮겨붙었다. 어피니티가 20 19년 3월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에 중재를 신청하자, 교보생명은 이듬해 4월 "어피니티와 딜로이트 안진이 의도적으로 FMV를 부풀렸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 공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ICC는 20 21년 9월 "풋옵션 가격은 잘못됐지만 풋옵션 행사 권리는 유효하다"고 판정하면서 다툼의 여지를 남겼다.

그러자 어피니티는 ICC 2차 중재를 신청하면서(2022년 2월), 신 회장에게 FMV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와중에 교보생명이 지난해 7월 IPO 예비심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사태가 더 꼬였다. 그러자 교보생명이 꺼내든 해법이 '금융지주회사 전환'이다. 교보생명을 지주사로 전환한 후 IPO를 통해 어피니티의 투자금 회수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거다.

그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보자. 교보생명이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를 설립한다. 기존 주주에게 새로 만든 지주사의 주식을 지급한다. 이후 교보생명을 지주사의 자회사로 편입하겠다는 거다.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가 가진 지분만큼 분할한 회사의 주식을 배정하기 때문에 불만을 줄일 수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신 회장은 지배구조를 강화할 수 있다. 신 회장은 유상증자를 통해 지주사 지분을 확보해 교보생명을 지배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교보생명은 지주사 주식을 유상증자하면서 신주 대금을 교보생명 주식으로 받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신 회장이 교보생명 주식을 현물 출자해 지주사 지분을 대거 확보하면서 '신창재 회장→지주회사→교보생명'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구축된다.

■ 지주사와 포석 = 자! 여기까지가 시장에 알려진 내용이다. 한가지 의문은 신 회장이 지주사 전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냐는 점이다. 언급했듯 풋옵션 논란은 신 회장과 어피니티 두 주주 간의 문제다.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사이의 분쟁이 아니다. 이 때문에 교보생명은 '회장과 다른 주주간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주요 논란이 있을 때마다 교보생명은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신 회장의 '입'을 자처하고 있다.

물론 교보생명은 정당한 일이라고 항변한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주주간 분쟁이 장기화하면 기업의 이미지가 훼손 되고, 회사의 피해를 두고 보는 건 배임이나 책임 회피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며 "관련 사안은 내부통제와 법률검토를 거친 사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어피니티와 신 회장의 분쟁 과정에 회사가 개입하는 건 '오너 지키기'에 불과하단 목소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교보생명은 지주사 전환을 통해 '오너 문제에 회사가 개입한다'는 비판을 잠재울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지주사 전환에 성공하면 신주 발행, 유상증자, IPO 등의 과정을 교보생명이 나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뉴시스] 

교보생명도 이런 가능성을 완전히 부인하진 않았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 후 인적분할에 성공하면 어피니티는 교보생명과 지주회사 양쪽의 주주가 되는 것"이라며 "지주사 전환 후 상장은 회사 차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당연히 (신 회장이 아닌) 교보생명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피니티가 풋옵션을 행사하려면 합의를 하거나 IPO를 통해야 하는데 지금은 쉽지 않다"며 "지주사 전환 후 상장은 어피니티에 엑시트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주는 셈 아니겠냐"고 말했다.

어피니티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어피니티 관계자는 "교보생명이 지주사로 전환되면 이후 IPO나 유상증자 과정의 협상 대상은 교보생명이 되는 건 사실"이라며 "신 회장과 우리의 문제가 교보생명과 어피니티의 문제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이 목표로 삼은 지주사 전환 시점은 2024년 하반기다. 그 이후 신 회장과 어피니티의 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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